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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1. 22.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Buena Vista Social Club, 1999)




정말 사랑스러운 영화다.
작위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지 않고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노인 음악가들을 한명씩 소개하며, 그들의 음악인생과 삶에 대해서 조용히 음미한다.
알수없는 묘한 감동이 밀려온다.

꽤 유명한 그 이름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그 영화를 미루고 미루다 이제 봤다.

수십년전, 그들이 젊었을때, 쿠바의 한 동네에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이 있었고, 클럽이 문을 닫은후 그들은 조용히 그들의 음악인생을 근근히 유지해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영국의 한 기타리스트는 20년전 들었던 쿠바 음악이 담긴 테잎에 감명을 받아 쿠바 음악을 찾아 다녔지만, 좀처럼 찾기 힘들었다.
그리고, 다시 찾아와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메인 보컬인 이브라힘을 비롯해, 피아니스트 루벤과 그외에도 콘트라베이스, 트럼펫 등의 악기 연주자들을 찾아낸다.
그리고, 그들을 모아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앨범을 내고, 80~90세가 된 그들은 큰 인기를 얻으며 결국 모든 음악가들이 서고 싶어 하는 무대인 카네기홀 에서 성황리에 공연을 해낸다.

아프리카 스타일의 독특한 타악기들이 많고, 유럽등 외국에서 유입되어 쿠바식으로 변형된 각종 악기들이 다양한 밴드.
8살, 9살에 음악을 시작한 사람부터 18살에 음악을 시작한 사람들까지,
그들은 어려서 음악을 시작해 70~90대의 노인들이 되었다.
노래에서 더이상 얻을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이브라힘은 새로운 계기를 만나게 되었고, 관절염이 있어 피아노를 못칠거라는 루벤은 10년동안 피아노 없이 살았지만 여전히 멋진 피아노 연주를 들려준다.

미국말도 아닌 에스파냐어.
무슨 노래인지 알아 들을 수 없어 자막을 봐야 대충 알게 되지만, 음악은 꼭 그 의미를 알지 못해도, 소리만으로도 감흥을 준다.
그래서, 음악이 만국 공통 언어다.
이브라힘의 목소리를 들으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 영화를 어떻게 만들게 되었고, 어떤 의미인지는, 영화 종반부 전에 라이 쿠더가 길게 나레이션 하는 부분에서 설명이 된다.

"이 모든 일은 어떻게 시작됐던가...
어느 날 월드서킷 음반사의 닉 골드가 쿠바에 함께 가자고 제안해 왔다.
아프리카 연주자들과 함께 쿠바음악을 음반으로 만들자고. 신선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난 70년대에도 하바나에 와서 쿠바음악을 찾아 다닌 적이 있었다.
친구가 쿠바음악이 든 테이프를 줬는데, 훌륭한 연주와 노래에 매혹된 것이다.
그건 전혀 색다른 느낌의 음악이었다. 난 여기저기 다니며 옛 곡을 수집했다.
하지만 그땐 뭘 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고, 일단 돌아와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닉의 요청대로 다시 쿠바에 갔는데, 아프리카 연주자들이 일정이 바뀌어 올 수 없게 되었다.
우린 쿠바인들로만 추진해 보기로 하고, 후안의 도움을 받아 사람들을 찾아냈다.
콤파이와 엘리아즈, 이브라힘, 아마디또 피오, 푼틸리타, 카차오, 바바리또.
예전에 날 매혹시켜 쿠바에 처음 오게 한 바로 그 테이프의 류트 연주자가 바바리또 였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난 이들이 살아 있는지도 모른 채 20년동안 그들의 음악을 들어왔다.
루벤은 10년 동안 피아노도 없었다.
사람들은 그가 관절염을 앓아 연주할 수 없다고 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그들을 찾아낸건 정말 대단한 행운이었다.
그들은 잊혀져 있었지만 살아 있었고, 재능과 지식을 아끼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음악에 임했다.
내겐 놀라운 경험이었다.
난 일생을 노력해도 어려운 일이었다.
난 요하킴에게 말했다.
이런 경험은 일생에 한번 있을 거라고.
난 모두를 한 자리에 모아 공연을 하면, 근사할 거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음반이 인기를 얻어 모두가 바쁠 때였다.
모두 모일 수 있는 곳은 암스테르담이었다.
4월 커리 극장에서 2일간 모두 다음은 카네기 홀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언제 뉴욕에 가냐고 내게 물었다.
솔직히 난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노력한 결과, 우린 7월 1일 그 곳에 가게 되었다.
그날 밤은 굉장했다.
우리 모두 기쁨에 넘쳐 열광했다.
그것은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마지막 공연이 될 것이다.
1998년 7월 1일 뉴욕 카네기홀.."

음악을 좋아하고, 음악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는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영화다.
나이가 들어서도 인정과 존경을 받으며 계속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것.
음악인에게 있어 그것이 가장 큰 행복일 것이다.
외국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나이든 음악가가 그리 인정받지 못한다.
그들이 설 무대가 거의 없고, 사회적으로 크게 존경받기 힘들며, 밥걱정 없이 꾸준히 음악한다는 것은 더욱 힘들다.
(트로트, 국악 같은 부류는 제외)
밴드 음악이 별로 인정받지 못하다보니, 밴드 음악은 20대에나 잠깐 하는 음악으로 치부되고, 댄스음악이나 힙합, 한국식 팝만이 팔린다.

물론, 음악가들은 대체로 가난하다.
음악을 한다는 것은 '가난' 을 어느정도 염두에 두어야 할 만큼, 고난이 많은 길이다.

초반부에 이브라힘에 대해 이야기가 진행될때, 이브라힘(메인 보컬)이 하는 말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이브라힘은 나사로 (성경속에 나오는 거지) 신앙을 믿는다고 한다.

" ... (중략) ..
나도 나사로 신앙을 믿거든요.
나사로는 성경에 거지로 나오지요.
그는 위대한 존재예요.
길을 열고...
힘없는 사람들을 도왔죠.
똑같은 이름의 성직자도 있지만...
내가 믿는 건 이 나사로입니다
구걸을 하던 나사로, 난 그에게 꽃을 바치죠.
가끔 촛불도 켜드리고요. 꿀도 바쳐요.
보세요! 벌꿀이에요.
여기 두죠. 향수도 많이 있어요. 정말이에요.
향수가 많죠.
나갈 때마다 뿌려 줘요. 나도 뿌리고.
술도 한 잔 올려요. 나처럼 술을 좋아하실 것 같아서, 술을 한 잔 드리죠.
가끔 아내가 만든 과자도 바쳐요.
어떤 건지 알아요?
그를 본 딴 과자를 만들어 바치는 거죠.
그럼 모두 그의 것이 되는 거죠.
우리 쿠바인들은...감사해야 할 거에요.
저 분 덕에... 이렇게 살고 있으니...
우리가 소유에 집착했다면, 오래 전에 사라졌을 거예요.
쿠바 사람들은 행운아지요.
우리들은 작지만 강해요.
저항하는 걸 배웠어요.
...(중략)..."

이브라힘을 비롯해 다른 음악가들의 생활을 카메라가 쫒아가면서 보여준다.
그들은 지극히 평범, 혹은 매우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성경속에 나오는 거지 '나사로' 를 믿는다는 이브라힘의 말과 함께, 그의 약간 궁핍해 보이는 삶은 묘한 감정에 휩싸이게 한다.

그외에, 영화 초반, 쿠바의 거리 풍경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체게바라의 그림들이 이곳저곳에 있는게 신선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쿠바는 반미 독재정권이다.
체 게바라는 (여기서 '체' 는 실제 이름이 아니라, 게바라 스스로가 붙힌 '어이 친구' 라는 뜻이라고 한다)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당시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혁명가지만,
체게바라가 죽은 이후, 쿠바는 또 독재정권이 된 셈이다.

붙임.
이브라힘 페레르는 2005년 8월 6일 사망.

줄거리 스크랩(네이버)---------------
1999년 영국. 쿠바 음악이 새로운 여름 음악으로 등극하며 레게와 라틴의 자리를 밀어냈다.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쿠바 음악에 심취한 유명한 기타리스트 라이 쿠더(Ry Cooder)는 이름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실력은 가장 뛰어난 쿠바의 뮤지션들을 모아 앨범을 녹음했는데 이것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앨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다. 얼터너티브 음악잡지 ‘SPIN’에서 이 음반을 90년대 명반에 포함시켰다. 이 앨범의 국제적인 성공을 통해 국내와 해외에서 오랫동안 간과되어 온 베테랑 뮤지션들의 이력이 다시 살아나게 되었다. 그 뮤지션 가운데에서, 가수 이브라힘 페레 Ibrahim Ferre와 피아니스트 루벤 곤잘레즈 Ruben Gonzalez는 새 작품을 녹음, 발표했다. 90세의 나이로 이 뮤지션들은 여전히 창조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빚쟁이 20대의 진실


12. 11. 5.

Jiro Dreams Of Sushi - Official Trailer



한번 직업을 결정하면
당신은 그 일에 몰두해야 합니다
일과 사랑에 빠져야 해요
절대 불평해선 안되죠
기술에 통달하기 위해
당신의 인생을 헌신해야 합니다
그것이 성공의 비밀이에요
그리고 명예롭게 사는 비결이죠
<스키야바시 지로 지로의 꿈 중>

12. 10. 30.

Knock for Knock



Visual artist Antony Crook, in collaboration with Rapha and RSA Films, presents Knock for Knock.

12. 10. 24.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다. 미셀 공드리



#1. 영화 <이터널 선샤인>
평범하고 착한 남자 조엘과 화려한 여자 클레멘타인. 서로 다른 성격에 이끌려 사귀지만 결국 성격 차이 때문에 점점 지쳐가기 시작한다. 조엘은 아픈 기억만을 지워준다는 라쿠나社를 찾아가 클레멘타인의 기억을 지우기로 결심한다.

#2. 영화 <수면의 과학>
어렸을 때부터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했던 스테판은 이웃에 이사 온 스테파니를 흠모하며 그들이 꿈으로 연결된 운명적 관계라고 믿기 시작한다. 독심술 기계, 1초 타임머신, 그리고 달리는 말 인형 등을 스테파니에게 선물하는 스테판. 그러나 스테판은 일의 스트레스와 사랑의 감정으로 꿈에 정복 당하고, 스테파니와의 관계는 극으로 치닫는다.

과연 이 말도 안되는 영화들을 영상으로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영상의 마술사'라고도 불리는 미셸 공드리(Michel Gondry)가 그 주인공이다.


Who Are You, Michel Gondry?

사랑했던 기억을 지우는 <이터널 선샤인>과 사랑은 왜 꿈처럼 되지 않을까에 물음표를 다는 <수면의 과학>. 위의 소개된 두 편의 영화는 줄거리부터 모두 범상치 않다. 초현실적인 세계를 다루는 이 영화들은 영상도 색감도 무엇보다 재기발랄한 상상력이 집약된 영화로 개봉 후 크게 이슈가 됐다.


이처럼 현재 활동 중인 감독 중 가장 창조적인 영상을 만드는 감독이라면 단연 미셸 공드리를 꼽을 수 있다. 그는 독특한 촬영기법과 개성 넘치는 무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영화, 뮤직비디오, CF 등을 통해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해왔다. 그 결과 세계 3대 광고제의 하나인 클리오 어워드와 칸 영화제 CF부문에서 금상을, 제77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각본상을 수상하는 등의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또한 그는 기술적 이노베이터로서 끊임없이 탄성을 자아내는 이미지를 창조해내는 감독 중 한 명이다. 여 기서 잠시 다른 이야기 하나. 영화 <매트릭스>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주인공 네오가 적의 총알을 피하던 바로 그 장면이 아닐까? 일명 '블릿 타임(bullet time)'으로 불리는 이 장면은 화면의 움직임을 각각의 정지 동작으로 연속 촬영한 '스톱모션'기법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런데 이 기법의 선구자가 바로 미셸 공드리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여러 개의 카메라로 동시에 촬영해서 허공에 멈춰 있는 이미지를 잡아내는 모핑기법은 'I AM'의 'Le Mia' 뮤직비디오에서 처음 사용되었으며, 아이슬란드 여가수인 '비요크(Björk)'의 'Army of me'와 영국 보드카 '스미노프(Smirnoff)'의 '스마리언버그(Smarienberg)' 광고에 사용되었다.

아직 미셸 공드리의 상상력에 감탄하기에 이르다. 그런데 그의 상상력은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How's your childhood, Michel Gondry?

그저 그런, 특색없는 영상들 사이에서 상상력을 동원한 스타일리시한 영상으로 단숨에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은 미셸 공드리. 그러나 그의 어린시절 꿈은 발명가였다. 물론 발명가의 꿈은 지금도 유효하다. 그는 영상계의 한 획을 그은 인물이기 때문에.
1963년 프랑스 베르사이유에서 태어난 그는, 어렸을 때 주로 그의 사촌과 함께 레고를 가지고 놀았는데, 12살에 이미 애니메이션 기계를 레고로 만드는 등 만드는 것에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훗날 이 재능은 그의 영상작업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또한 그의 예술가적 기질은 그의 가정에서부터 출발했다 과언이 아니다. 그의 할아버지는 최초의 키보드 중 하나를 발명한 인물로, 전자오르간 가게를 운영했고, 아버지가 가게를 물려받아 운영했다. 그의 아버지 역시 팝 음악 마니아로 집 안 가득 여러가지 악기를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가 후에 가게 문을 닫을 때 미셸 공드리에게는 드럼세트를, 그의 형인 올리비에 공드리에게는 베이스 기타를 주었다고 한다. 이후 이 둘은 펑크 밴드를 결성하지만, 미셸 공드리가 파리에 있는 아트스쿨에 진학하게 되면서 그는 친구들과 '위위(Oui Oui)'라는 밴드를 결성한다.


'위위'는 10년 동안 2개의 앨범과 10개의 싱글을 발매하지만 이렇다 할 호응을 받지는 못한다. 미셸 공드리는 '위위'의 드러머이자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며 1960년대 팝 음악에 영향을 받은 자신의 독특한 상상력을 뽐낸다. 우연히 MTV에 방영된 '위위'의 뮤직비디오를 아이슬란드 여가수인 '비요크(Björk)'이 보게 되면서, 미셸 공드리에게 자신의 노래, 'Human Behavior' 뮤직비디오를 부탁한다. 비요크는 당시 밴드 '슈가큐브(Sugar Cube)'를 나와 솔로로 데뷔를 하는 때였고, 미셸 역시 '위위'의 해체로 혼자가 된 상황이었다. 이 둘의 솔로 데뷔는 한 마디로 대성공!
이후 미셸 공드리는 '매시브 어택(Massive Attack)', '벡(Beck)', '롤링스톤즈(Rolling Stones)', '케미컬 브라더스(The Chemical Brothers)' 등의 뮤직비디오와 갭, 에어프랑스, 코카콜라, 리바이스 등과 광고를 작업하게 된다. 그의 뮤직비디오, 광고, 단편영화 등은 곧 할리우드의 주목을 받아, 2001년 찰리 카우프만의 각본으로 연출한 <휴먼 네이쳐>를 연출해 세상을 깜짝 놀래키고, 이후 두 번째 작품 <이터널 선샤인>에서는 찰리 카우프만과의 공동작업으로 제77회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다.

Michel Gondry's Art-work

미셸 공드리의 영상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미셸 공드리가 왜 '영상의 마술사'라 불리는지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영화는 물론이거니와 길어봐야 5분 남짓한 시간동안 보여주어야 하는 그의 뮤직비디오나 CF를 보면 절로 감탄이 터져나온다. 그 짧은 시간동안 담아내는 그의 세계는 이렇다.
미셸 공드리 영상의 특징 중 하나는 애니메이션 기법이 많이 보인다는 것이다. 그가 제작했던 '위위'의 뮤직비디오는 애니메이션과 스톱모션으로 이루어진 것이 대부분. 또한 앞서 언급했던 영화 <매트릭스>의 '불렛 타임(Bullet Time)'은 미셸 공드리의 몰핑기법에서부터 출발한 것인데, 이는 애니메이션에서 쓰던 기법을 가져온 것이다. 


더불어 미셸 공드리의 영상에서는 유아적인 아기자기함과 독특한 상상력이 돋보인다. 어린시절 레고의 영향인지 레고로 만든 '화이트 스트라입스(The White Stripes)'의 'Fell In Love With a Girl' 뮤직비디오나 털실로 만든 '스테리오그램(Steriogram)'의 'Walkie Talkie Man' 뮤직비디오 등을 대표적인 영상으로 꼽을 수 있다.

아무리 작은 소품이라 할지라도 미셸 공드리의 손을 하나하나 거친 이 영상들은 가히 '예술작품'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의 치밀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영상을 소개한다. 바로 세계적인 일렉트로닉 뮤지션이자 '화학형제'라 불리는 '캐미컬 브라더스'의 <Star Guitar> 뮤직비디오를 감상해 보자.

리듬을 분석하고, 조율하고, 풍경을 배치하고 하는 이 모든 과정이 상당히 치밀하다. 수작업 뿐 아니라 컴퓨터 그래픽 CG 작업까지 어느 한 부분 소홀히 하는 경우가 없다. 위의 메이킹 영상을 보고 다시 한 번 뮤직비디오를 감상해 보자. 화면 속 그냥 흘러가는 배경이라 생각했던 것들을 재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위위' 활동 당시 드럼을 쳤던 관계로 유난히 리듬감과 박자감이 좋은 미셸 공드리는 '화이트 스트라입스'의 'The Hardest Button To Button'에서 박자에 맞춰 드럼과 기타를 등장시키는 등 흥미로운 연출을 선보였으며, '바인스(The Vines)'의 'Ride' 뮤직비디오에서도 마찬가지. 음악이 터지는 부분을 잘 살려 표현했다.


미셸 공드리가 그의 작품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키워드는 '현실'과 '꿈'이다. 비요크의 'Hyperballad' 뮤직비디오에서는 좀더 명확하게 현실과 꿈에 대해 다룬다.

눈을 감은 여자가 누워있고, 그녀가 잠을 자는 동안 그녀의 분신은 노래하고, 달리고, 추락한다. 꼼짝 않고 누워있는 여자는 운명에 포박당한 느낌을 주지만, 분신은 현실에서 하지 못하는 행위를 담당한다. 즉 분신은 가능성, 자유로움을 상징하는 것. 따라서 분신이 달리다 추락한다 해도 개의할 일이 아니다. 파멸보다는 과감한 시도와 무한한 자유이기 때문. 곧 미셸 공드리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꿈은 환상, 판타지, 공포 등 온갖 상상을 제공하는 공간이고, 분신이 활약하고 존재할 수 있는 터전이라는 말이 아닐까? 이를 영상으로 자유롭게 풀어내는 미셸 공드리의 능력에 다시 한 번 감탄할 수 밖에 없다.

Michel Gondry & New Balance


PHANTACi x New Balance MT580 ‘Green Hornet’ 미셸 공드리의 2011년작 <그린호넷>은 철없는 백만 장자가 영웅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내용의 슈퍼히어로 액션물이다. 뉴발란스는 <그린호넷>의 개봉을 기념하며, <그린호넷>의 주인공이자 Pantaci의 소유주인 주걸륜(영문 이름 Jay Chou)가 직접 참여한 Phantaci와 콜라보레이션을 발매했다. 호넷의 컬러인 그린 컬러와 핑크 컬러가 포인트 컬러로 쓰인 제품이다.

현실과 꿈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작업은 어린시절 누구나 한 번쯤 공상했던 세계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 세계를 고스란히 영상으로 표현한 그의 능력에 감탄할 만하지만, 무엇보다도 아직까지 잊지 않고 간직하고 있다는 것 자체도 놀랍다. 또한 이 세계를 혼동시키지 않고 적절하게 경계를 유지한다는 점에서도 박수를 보낸다.

미셸 공드리는 자신의 나이를 '난 항상 열두 살이에요(I've Been Twelve Foever)'라고 말한다(이는 그가 만든 다큐멘터리 소책자 제목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어른이 되면 자연스레 갖추게 되는 '냉소'를 가장 싫어한다고 말하며, 어른 뿐 아니라 젊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거만한' 냉소주의도 걱정스럽다 했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을 다르게 보고, 점점 호기심이 줄어들고 쉽게 감동을 느끼지 않는 그런 매너리즘에 빠진 일상에 미셸 공드리의 답변은 경종을 불러일으킨다.
한 인터뷰 중 타임머신이 있다면 어디를 가보고 싶냐는 질문에 '시간의 끝이나 블랙홀 안을 보고 싶다'고 답변하기도 한 미셸 공드리. 역시 그 답다.

- 미셸 공드리 공식 홈페이지 www.michelgondry.com- 

12. 8. 3.

디자이너의 자리

디자이너의 자리

글. 오창섭

<America's Dream>(1996)이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3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 하나인 ‘Long Black Song’의 배경은 1938년 미국 알라바마의 한 시골 마을이다.
데 니 글로버(Danny Glover)가 연기한 주인공 사이라스(Silas)는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는 가난한 흑인 농부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아내와 딸이 있다. 어느 날 사이라스는 옥수수를 팔기 위해 읍내로 나간다. 옥수수를 팔고 받은 돈으로 그는 아내에게 줄 반지를 구입하려고 한다. 이것을 보고 있던 가게 주인이 말한다. “사이라스! 내가 보기에 자네 아내는 좀 더 유용한 것을 좋아할 것 같아. 저기 있는 빨래판 같은 거 말이야. 그녀에게 보석을 사주는 것은 정신 나간 짓이야.” 이렇게 말하는 가게 주인은 인종 차별주의에 물든 백인이었다. 그의 말에 사이라스는 분노하며 다음과 같이 답한다. “사람은 때때로 필요한 것보다 원하는 것을 소유해야 합니다.”

‘필 요한 것’과 ‘원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영화에서 가게 주인은 빨래판을 ‘필요한 것’의 사례로 이야기하였다. 빨래판은 빨래를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물이다. 우리가 옷을 입고 생활하는 이상 빨래라는 활동은 피할 수 없는 것이고, 따라서 그것을 도와주는 사물 역시 필요할 수밖에 없다. ‘필요한 것’은 이렇게 도구적 차원에서, 그리고 유용함과 관계에서 정의되는 것이다.

반 면 ‘원하는 것’은 ‘필요한 것’과 다른 맥락에서 정의된다. 영화에서 반지는 ‘필요한 것’과 대비를 이루며 ‘원하는 것’을 대표하는 사물로 등장한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반지는 빨래를 도와주지 못한다. 설거지를 도와주지도 못하고, 궂은 날씨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반지와 같은 것을 원한다. 왜 그럴까? 그것은 아마도 필요의 맥락에서 충족되지 못한 것들을 충족시켜주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 공동체, 기억, 믿음 등과 같은 것 말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욕망하는 대상이 된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원하는 것’으로 정의된다는 말이다. 영화에서 반지가 ‘원하는 것’의 목록에 포함되었던 것은 아내와 남편이라는 사회적 관계가 존재하고, 반지를 주고받는 것이 문화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서로의 관계를 확인하고, 사랑을 확인받고자 하는 욕망이 그것을 ‘원하는 것’의 목록에 배치하는 것이다. 

그런데 ‘필요한 것’과 ‘원하는 것’ 사이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내용은 보다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가게 주인은 반지를 구입하겠다는 사이라스에게 왜 빨래판과 같은 ‘필요한 것’을 구입하라고 했을까? 그리고 가게 주인의 말에 사이라스는 왜 분노했던 것일까? 우리는 가게 주인의 그럴듯해 보이는 말이 사실은 고유의 자리를 지정하고 확인하는 명령어라는 사실을 떠올려야 한다. 그는 사이라스가 있어야 할 자리, 그의 가족이 있어야 할 자리를 인간적 삶이 있는 곳이 아니라 기계적 노동이 반복되는 자리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반지를 통해 사랑을 주고받으며 행복을 느끼는 자리가 아니라, 쪼그리고 앉아 빨래와 씨름하며 끊임없이 노동하는 자리 말이다. 가게 주인의 말은 또한 발화주체인 자신의 자리를 스스로 확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쪼그리고 앉아 빨래와 씨름하며 끊임없이 노동하는 자리가 아니라, 반지를 주고받으며 사랑과 행복을 느끼는 자리가 자신의 자리라고 통보하는 것이다. 사이라스의 자리를 노동의 자리로 규정하고 있던 가게 주인에게 반지를 구입하려는 행동은 불편한 것이었다. 가게 주인에게 사이라스의 행동은 경계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벗어나려는 도전적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가게 주인이 그런 말을 한 이유인 것이다.

그렇다면 각각의 자리를 만들어내는 경계는 언제, 어떻게,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일까? 가게 주인이라면 본래부터 있었던 것이었다고 말할 것이다. 더 나아가 뭐 그런 것을 묻느냐고,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본래부터 있었던 것도, 당연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분명 만들어진 것이다. 경계가 존재해야 이득을 취할 수 있는 이들에 의해서 말이다. 경계를 만든 이들은 경계의 벽이 공고히 유지되기를 바라고, 그래서 언제나 “그곳이 너의 자리야. 그곳을 벗어나는 것은 너에게 어울리지 않아”라고 속삭인다.

경계를 만들고, 그 경계의 외부에 상대를 배치함으로써 자신의 우월함과 이득을 확인받으려는 움직임은 더 이상 영화 속 가상 세계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도 다양한 형태의 자리를 규정하는 경계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배자의 자리와 피지배자의 자리, 전문가의 자리와 아마추어의 자리,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의 자리 등등. 각각의 자리는 그 자리에서 취해야하는 태도와 행동들이 어떤 것인지, 그 자리에서 꾸어야 하는 꿈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규정한다.

오늘날 디자이너들은 어떤 자리에서 활동하고 있을까? 그곳은 어떤 태도와 행위들을 요구하고, 어떤 꿈이 허용되는 자리일까? 그리고 어떤 태도와 행위가 금지되고, 어떤 꿈이 거부되는 자리일까? 나는 우리 디자이너들이 활동하는 곳이 다음과 같은 자리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소비자들의 호주머니를 열게 만들 매력적인 상품을 디자인하는 일이 디자이너의 고유하고 유일한 역할이라고 정의하는 자리, ‘시민’이나 ‘소통’과 같은 그럴듯한 수사로 사적인 의도를 가리면서 화려한 볼거리들을 연출해내는 것을 디자이너의,새로운 역할이라고 이야기하는 자리, 하루가 멀다 하고 밤을 새면서도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그것을 감수하는 것을 디자이너의 당연한 미덕인 것처럼 규정하는 자리…


출처: 지콜론

꼭 들어갔다.

꼭 들어갔다. 프로그 디자인, 안랩

12. 7. 24.

[독후감] 게으름

* 가끔 신문 광고에서 생의 절망에 빠진 사람, 사업데 망한 사람, 별 걸린 사람들의 인생을 바꾸어 드린다는 신앙 집회 문구를 보게 됩니다. 그런 집회는 참석자의 상당수가 단번에 무슨 일이 일어나길 기대하며 모인 사람들 입니다. 물론, 알고 보면 표어만 그렇게 선동적으로 내걸었을 뿐 건전한 집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직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감사 헌금 봉투 하나 들고 '주여 믿사오니'하며 나아가 지성의 스위치를 끄고 미친 듯이 기도에 매달리면, 어느 한 순간에 불을 받아서 자신의 모은 인생의 문제를 해결받고 큰 목을 받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의 뿌리에는 영적 게으름이 있습니다.


* 제가 전도사 시절의 일입니다. 교역자 회의를 하던 중 한 교역자가 심방을 안 하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연로하신 담임 목사님은 낮은 어조이지만 침통한 목소리로 "그렇게 하면 되겠습니까?"라고 그 교역자를 나무랐습니다. 이윽고 교역자 회의를 끝나고 모두들 자리를 떠나는데, 담임 목사님만이 유독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살펴보니 그 분은 슬픈 기색으로 이렇게 혼잣말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살펴보니 그 분은 슬픈 기색으로 이렇게 혼잣말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살펴보니 그 분은 슬픈 기색으로 이렇게 혼잣말을 하고 계셨습니다. "저렇게 게으르게 살다가 주님을 어떻게 만날꼬.저렇게 나태하게 일하다가 무슨 면목으로 우리 주님을 뵈오려고."가슴 아픈 표정으로 고개를 두신 그 분의 눈가에는 이슬이 맷혀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주님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 게으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도 수면 시간을 조절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새벽에 일찍 일어나고, 하루 5시간 이상 안 잔다고 하여도 그렇게 부지런히 살아야 하는 분명한 목표가 없다면 덜 자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목표를 가지고 있으면 그 목표에서 빗나가는 일을 하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거시 싫습니다. 잠도 마찬가지입니다. 불붙는 인생의 목표를 가진 사람들에게 필요 이상의 잠의 목표에서 벗어난 일입니다. 꼭 완성해야 할 일이 남아 있으면 밤에 잠이 안 옵니다. 아침 일찍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아침에 일찍 깹니다. 분명한 목표 의식 없이 그냥 기계처럼 시간에 쫓겨서 생활하기 때문에 늘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힘든 것입니다.


* 게으른 사람일수록 포기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게으른 사람은 부지런한 사람보다 많이 결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개의 그릇을 가지고 와서 거기에 손을 부지런히 집어 넣지만 아무것도 입까지 끌어올리지 못하기에 언제나 배고픕니다.


* 일에 있어서는 최선을 다해도 실패할 수 있지만, 출퇴근의 문제에 있어서는 최선을 다하면 실패할 수 없습니다. 우리를 고용한 사람에게는 우리의 1분이 모두 돈인데, 출근 시간에는 늦게 오고 퇴근 시간에는 시간이 되기전 전에 몰래 살금살금 퇴근하면서 이렇게 그리스도인으로서 빛 된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직장에서 하나님을 드러내며 빛 된 존재로 살기 원한다면, 직장에서 요구하는 시간이 8시간이더라도 10시간을 투자할 마음으로 다녀야 합니다. 그래야만 자신의 일도 남보다 완벽히 하면서 남을 돋고 복음까지 전하며 지낼수 있습니다. 자신이 맡은 모든 일에 성실하고, 자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감화를 끼치기 위해서는 남보다 더 부지런해야 하고 더 활기 있어야 합니다.그리고 이것은 몸과 마음이 필요로 하는 것보다 더 많이 준비되는 데서 비롯됩니다.


* 우리가 자주 우리가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가슴 뿌듯해 하고, 자기 깨어짐의 경험을 대견해 하고, 무안가 거룩한 결심들을 많이 하였던 사실을 자랑스러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고자 하는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내 영혼의 병든 상태를 부인할 수 없도록 정확하게 가르쳐 주시고 내 인생의 망가진 상태를 알려주셨을 때, 그것을 끝까지 붙들고 씨름하여 "이겼다! 주님의 은혜가 내 안에서 승리했다"하며 환호하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연약합니다. 선한 것이라고 하는 것을 알았어도, 그 일을 이행하는 일에 있어서 너무 약합니다. 집요하게 반응하며 끝까지 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이런 삶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변화된 삶으로 이해될 수 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렇게 살면 안 됩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제가 수시로 깨어나서 은혜를 받았습니다"라고 말하지만,하나님 입장에서는 늘 깨워도 늘다시 잤습니다. 뭔가 해보려고 하다가는 다시 자고, 해보려고 하다가 다시 주저 앉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삶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를 성화시켜서 회복시키고자 하시는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예수님의 형상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사셨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 분은 정말 불꽃처럼 사셨습니다. 일찍 죽으시려고 작정이나 하신 듯, 자기를 다 태우시면서 사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열렬하게 반응하며, 진리를 헛되이 땅에 떨어뜨리지 않고 몸소 실천하며 사셨습니다. 영혼들을 사랑하시되 배반하는 제자까지도 끝까지 사랑하셨고, 진리를 가리치시되 십자가에 배반하는 제자 까지도 끝까지 사랑하셨고, 진리를 가르치시되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면 서까지 가르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이 본받고 싶어하는 예수님의 삶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감격하는 것으로 입증되는 것이 아니라 신령한 것에 대한 끈질기도 집요한 집착으로 입증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향해 이런 사랑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의 그 사랑은 환경을 뛰어넘는 것이었으며, 죽음이라는 칼로도 끊을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환난, 핍박, 위험, 기근으로도 끊어지지 않는 정말 질기디 질긴 사랑이었습니다. 결국 그 끈질긴 사랑은 우리를 설복시켰습니다.


*10여 년 전의 일입니다. 저는 어떤 기독교 잡지를 읽다가 그만 울고 말았습니다. 노동 운동을 하다가 하나님 만나고 전도자가 된 사람의 기사였는데, 인터뷰에서 그가 한 말이 저의 가슴에 못처럼 박혔기 때문입니다. 불법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감옥까지 갔다 온 그 사람은 그 후 예수님을 영접하고 열심 있는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매일 전철에서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인터뷰를 끝내며, 희망 사항을 묻는 기자의 마지막 질문에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인터뷰를 끝내며, 희망 사항을 뭍는 기자의 마지막 질문에 그는 다음과 같은 기도로 대답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이렇게 배운것도 없고 갖춘 것도 없어서 더 크게 주님의 일을 할 수 없어요. 그래서 언감생심 하나님께서 저를 크게 써 주시도록 기고고 못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혹시, 하나님께서 귀한 사명을 맡겨 주신 사람 가운데 게을러서 그 일을 제대로 안 하며 주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게으른 그 사람 굳이 쓰지 마시고 저를 대신 그 자리에 보내 주세요. 잘하는 것은 없지만 정말로 열심히 주의 일 하겠습니다."

그 기도를 읽으면서 사명감도 없이 감사도 없이 냉랭하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기도에 즉각적으로 응답해 주시지 않았기에 우리같은 사람이 이렇게 남아 있지, 만약 하나님께서 바로 응답해 주셨다면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지 못할 것입니다.


* 한 가지 직업을 얼마나 오랫동안 해 왔느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일을 얼마나 분발하여 해 왔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일을 얼마나 분발하여 해 왔느냐입니다. 그저 일을 견디고 있는 사람과 그 일에 적극적인 열정을 가지고 잘 해내려고 애쓰는 사람의 차이는 엄청납니다. 한 사람은 주어진 일만 기계적으로 겨우겨우 해 나가는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그 일과 함께 발전해 나가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에 대하여 열정적으로 분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 열정을 품고 하나님의 일을 해야만 함을잘 알고 있지만, 내 안에 열정이 없음을 아는데도 섬김을 내려놓을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섬김을 내려놓자니 그 동안의 섬김이 너무나 후회 스러워 좀더 열심을 품어 과거의 실수를 만회하고 싶어서일 수도 있을 것이며, 이나마도 하지 않으면 신앙이 바닥까지 떨어질 것 같아 두려워서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자신의 이름 앞에 붙는 직함이 필요해서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정이 어떻건 일을 맡았으면 그것을 그냥 붙들고만 있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 계속 고통을 드리는 일입니다. 하나님 앞에 무엇인가 사명을 맡았으면, 마치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열렬한 태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감당하기 위해서 그것을 중심으로 자신의 생활을 재편해야 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없으면 다른 일을 포기하고, 집이 멀면 이사를 하고, 돈이 필요하면 조달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일을 하기에 앞서 '주님께서 만약에 내 자리에 계셨더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하고 생각하는 일들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매 순간 자신이 그 일을 위해 움직이는 동기가 무엇인지, 자신이 올바른 동기로 움직이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자리에 계셨더라면 가지셨을 태도와 방식으로 살아야 합니다.


* 이미 성경에 다 나와 있는 결론을 체험해 보기 위해서 그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는 건 너무나 어리석은 일입니다. 지혜 없는 사람은 위험한 약을 한 동이 다 마시고 그 맛에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하다 죽어가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입에 살짝만 대 보고도 위험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멀리합니다. 즉, 무언가를 경험하고 깨닫는 일에 있어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경험의 양이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는 지적인 판단 능력과 그것을 자신의 삶에 적용하는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 세상에서 제일 바보 같은 사람은 다른 일에 너무 바빠,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해 쓸 시간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늘 자원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요, 창조르를 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며, 자신을 구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잊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잠시동안, 스스로 하나님을 떠나 자유롭게 산다고 생각하지 모르지만, 실상은 하나님 안에서 누리던 자유를 버리고 세상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12. 7. 17.

2012년 상반기 IT 업계 최악의 사건 사고

마야 달력상 인류 마지막 해의 절반이 지난 지금, 2012년의 눈에 띄는 사건들을 돌아보기에 좋은 시점이다. 앞으로는 이런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올해 지금까지 최고의(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최악의) IT 업계 사건 목록을 살펴보자.  


1. 페이스북의 뻔뻔함

그리스가 트로이에 거대한 목마를 건네 준 이래 가장 큰 기대를 모은 IPO였고, 그 결과는 소액 투자자들에게는 트로이 목마 못지않은 재앙이었다. IPO 주가 폭등과 기술 주식의 호황기 대신 우리가 목격한 것은 수습 불가능한 혼란이었다. 페이스북 주식이 거래되기도 전에 나스닥부터 폭락했다. 페이스북 주식은 잠깐의 상승 후 급락했고 아직도 회복하지 못한 채로 이 기사를 작성하는 현재 최초 제안 가격의 약 3분의 2 수준에서 거래되는 중이다. 이유는 이렇다. IPO 로드쇼에서 페이스북은 대형 은행을 대상으로 예상되는(즉, 현재는 없는) 모바일 매출 전망에 대한 정보를 공개했는데, 이 정보는 일반 대중 투자자들에겐 공유되지 않았다. 마크 주커버그는 자신의 페이스북 설정을 "주요 기관 투자자들과만 공유"하기로 설정한 듯하다.


2. 특허 난장판

지난 봄 미친 특허 변호사 군단이 IT 업계를 점령했다. 페이스북과 야후, 애플과 삼성, 오라클과 구글...목록은 끝도 없다. 심지어 판사들조차 이 상황에 질린 것 같다. 지난 6월 미국 연방 판사 리차드 포스너는 모토로라와 애플 간의 소송에서 모토로라의 주장은 "터무니없고" 애플의 소송은 "경솔하다"고 지적한 후 같은 건으로는 재차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건까지 걸어서 소송을 기각했다. 나머지 3,300명의 미국 연방 판사가 이 판사의 뒤를 따른다면 사태가 좀 해결될지도 모르겠다.



 3. 야후의 이력서 게이트

누가 봐도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는 상황에서, 야후는 한층 더 나빠졌다. 새로 임명된 CEO 스콧 톰슨이 막 직원 정리해고를 시작하고 특허 위반 명목으로 페이스북에 소송을 제기한 시점에서, 그의 이력서가 완전히 엉터리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톰슨은 컴퓨터 과학 학위를 받지 않았다. 그는 실수라고 말했지만, 10년 이상 그 실수를 계속 저지르며 살았던 셈이다. 결국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면 아무도 원하지 않을 야후 CEO직을 톰슨이 수락한지 3개월 만에 분노한 투자자 댄 로브는 가짜 이력서를 이유로 톰슨을 해고했다. 로브는 새로운 임시 CEO 로스 레빈슨에 대해서는 흡족해하는 것으로 보인다. 레빈슨의 최대 업적은 뭘까? 그는 2005년 당시 전 직장인 뉴스 코퍼레이션이 마이스페이스를 거의 6억 달러에 사들이는 데 일조했다. 야후 CEO로 어울린다.



4. 정말이야, 시리?

그저 그런 아이폰 4S에서 그나마 가장 눈에 띄는 새로운 기능인 시리가 가끔 멍청한 말을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예를 들어 WMPower User의 블로거가 "세계 최고의 휴대폰은 무엇인가?"라고 묻자 애플의 똑똑한 비서 시리는 "노키아 루미아 900"이라고 답했다.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는 걸까? PC 월드의 에드 오스왈트의 설명에 따르면 이렇다. 시리는 질문에 답할 때 괴짜 검색엔진인 울프람 알파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참고하는데, 이 울프람 알파는 스마트폰에 대한 정보를 하필이면 베스트바이에서 가져온다. 베스트바이의 웹 사이트를 보면 노키아 900에 대해 별 5개를 준 리뷰가 몇 개 있는데, 시리는 이것을 보고 답변한 것이다. 결국 애플은 시리의 프로그램을 수정해서 이 질문에 대해 아이폰을 암시하는 답변을 하도록 했다. 다른 질문이 있는가? 하지 말라.



5. 구글의 거짓말과 염탐 행위

구글은 수백만 개의 공개 와이파이 네트워크에서 전송되는 데이터를 몇 년 동안 의도적으로 수집하면서 아무한테도 그 사실을 얘기하지 않았던가? 맞다. 구글은 그랬다. 구글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 염탐 행위를 조사하는 당국자에게 자신들이 무엇을 알고, 언제 알게 되었는지에 대해 계속 거짓말까지 했다. 지난 4월, 많은 부분이 삭제된 25페이지 분량의 사건 관련 FTC 보고서를 원본 그대로 공개하라는 명령이 구글에게 내려진 후에서야 어디까지가 거짓말인지 명백히 밝혀졌다. 구글이 말하기를 "사악해지지 말자"고 했던가? 이젠 기억도 나지 않는다.



6. SOPA, PIPA, CISPA -- 우울함

무차별적인 의회 입법의 머리 셋 달린 괴물이 이번 봄 인터넷 마을을 휩쓸고 지나갔다. 인터넷 주민들은 많은 지지를 받은 인터넷 "블랙아웃"을 통해 괴물의 머리 두 개는 잘랐지만, CISPA는 남았다. CISPA를 지지하는 페이스북, IBM,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거대 기업들 덕분이다. CISPA, 즉 사이버 정보 공유 및 보호 법안은 지난 4월 하원을 통과했고 현재 비슷한 두 법안과 경쟁 관계에서 상원의 판단을 기다리는 중이다. 한편 이 법안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인터넷 수호 모임(Internet Defense League)을 결성했다. 아이언 맨과 인크레더블 헐크를 설득해서 여기 가입시킬 수만 있다면 승산이 있을 텐데.



7. 냉전시대에 돌입한 사이버 전쟁 

미국은 사이버 전쟁을 좋아하는 것 같다. 부시 대통령 시절 시작되어 오바마 대통령까지 이어진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은 NSA와 이스라엘 비밀 정보국이 공동 개발한 스턱스넷 웜을 이란 우라늄 처리 시설에 주입해 원심기를 고장내고 재료를 망쳤다. 그러나 스턱스넷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다른 컴퓨터 시스템으로 퍼져나갔다. 현재 스턱스넷의 사촌격인 플레임이 중동의 네트워크를 맹렬히 감염시키고 있다. 언제, 어디서 멈출지는 아무도 모른다.


 

8. 윈도우 폰의 허망한 야심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 폰 7.5의 속도를 너무 자랑스럽게 생각한 나머지 지난 5월 마이크로소프트 스토어 방문자들을 상대로 '윈도우 폰을 잡아라'는 이벤트를 열었다. 일련의 기본적인 작업에서 다른 스마트폰이 윈도우 폰 7보다 빠르면 그 주인은 1,000달러짜리 HP 노트북을 선물로 받을 수 있는 이벤트였다. 이벤트가 시작되고 며칠 후, 사하스 카타의 안드로이드 폰이 윈도우 폰을 앞질렀는데, 그 순간 스토어 직원들이 경연을 무효로 선언했다. (대략 하루가 지난 후 마이크로소프트 고위 관계자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우습게 보이는지 인지했는지 이 결정을 번복한 후 카타에게 노트북을 지급했다.) 마케팅 담당자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이벤트를 기획했는지 궁금하다.



9. 애플에게 "탈옥(j***break)"은 금지어

애플에게 유머 감각이 없다고 말하는 자 누구인가? 아이폰에 대한 탈옥을 계속 허용하도록 DMCA를 개정할 것인지 여부에 대한 심리가 열린 그날, 애플 스토어의 누군가가 "jailbreak"라는 단어를 검열했다. 심지어 씬 리지(Thin Lizzy)의 유명한 동명 곡까지 검열 대상이 됐다. 애플은 씬 리지의 "더 보이즈 아 백 인 타운(The Boys Are Back in Town)"을 더 좋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더 나은 노래이기도 하다.)



10. 줄줄 새다

지난 1월, 자칭 '다마라자의 군주'라는 해커 그룹이 노턴 안티바이러스의 소스 코드를 웹에 게시했다. 2월, 어노니머스는 자신들을 어떻게 검거할 것인지에 대해 FBI와 스코틀랜드 경찰국 간에 이루어진 통화를 도청한 다음 이것을 유튜브에 오디오로 게시했다. 같은 달 보안 컨설팅 업체 스트랫포 글로벌(Stratfor Global)의 이메일 500만 통도 어노니머스에 의해 온라인에 공개됐다. 3월에는 제로데이 원격 데스크톱 악용 사례가 웹에 확산됐다. 이 코드의 소스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제로데이 공격을 식별/억제하기 위해 만든 프로그램이다. 최근에는 러시아 해커가 링크드인 사용자 600만 명의 해시된 암호를 훔쳐 온라인에 게시했다. 이 해커는 자신이 아는 암호 해커들을 모두 모아서 이 암호를 디코딩했다. 너무 게으른 나머지 보안 수단을 구현하지 않아 해킹될 사이트는 아예 인터넷을 사용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IDG Korea

CSO, PC World, Computer World, CIO, Macworld 등으로 잘 알려진 IDG는 90여 개국에서 180여 미디어를 발행하는 글로벌 테크놀로지 미디어로, 전 세계에 1억 4000만 명의 독자를 대상으로 미디어, 리서치, 컨퍼런스, 이벤트 등 다양한 테크놀로지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12. 7. 5.

[독후감] 크리티컬 매스

아나운스 백지연씨가 tvN 피플 인사이드라는 인터뷰형식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만났던 많은 시대의 명사들을 보면서 그들의 남다른 점들을 관찰하고 풀어낸 책이다. 책 제목만 보면 무슨 화학책 같은데 ㅎ 책표지 제목에 나와있는 부제목을 봐서도 알수있듯이, 크리티컬 매스는 한 사람이 특정 분야에서 그 능력을 폭팔 시키는데 나타내는 온도인데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사람이 특정분야에서 능력을 폭팔시키는 것이 15도라고 치면, 우리는 가끔 14도에서 멈추거나 아님 더 낮은 온도에서 멈춘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14도에서 멈춘(포기)한 사람은 자신이 1도만 더 노력했으면 그 임계점에 도달할 수 있었을텐데 아쉽게 그것 조차 모르고 산다는 것이다.

그런 내용을 담은 책이고, 각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중, 인상 깊은 내용들을 몇자 적어본다.


*CF,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알려져 있는 차은택 감독, 그에게는 같은 회사 동기이자, 라이벌인 친구가 있었다. 어느날 그 친구가 그를 제치고 수상을 하였는데, "그날 저녁 사무실로 다시 돌아와서 밤새 스크랩을 했어요.그 친구가 상을 탄 게 부럽기도 하고 내 처지가 속상 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술이나 마시고 하면 뭐하겠어요. 그럴 수 없었어요. 그냥 변함없이 내 일을 해야 겠죠.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 거죠. 다음을 위해서. 언젠가 내게도 기회가 오리라 생각했고 그래서 준비되어 있고 싶었어요"

그 또한 다름 사람의 앞선 성취가 부럽기도 하고 초조하기도 했을것이다. 그러나 차은택은 자신을 갉아먹기만 하는 실체 없는 좌절이나 두려움에 지는 대신 실체 있는 준비를 한 것이다. 물론 그 후 그에게는 기회가 오고 또 왔다. 이름을 날린지 오래인 현재도 수습사원 시절에 하던 스크랩과 자료 조사를 하느라 밤을 새는 일이 다반사라고 했다.


*이제석과 함께 일했던 빅앤트 대표 박서원씨, 그는 이제석과 함께 광고계에서 가장 핫한 인물이고 해외 수상도 여럿있는 인물이다. 그런 그의 객관적인 실력에 비해, 최근 밝혀진 두산그룹 박용만 회장의 장남이라는 이야기때문에 실력이 많이 저평가 되지만, 그래도 그는 누구나 인정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다.

"죽어라 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는 사람들이 지레 그가 가지고 있으리라 짐작하는 아이디어 창안법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한다. "아이디어를 만들어낼 방법은 없어요. 다만 훈련을 통해서 얻어진 직감을 활용 하는 거죠." 직감, 직감마저도 훈련을 통해서 얻어진 길러내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내가 말하는 크리티컬 매스는 그가 말한 훈련이 쌓이고 쌓여서 형성되는 것이다.


* "우리는 작은 마을에 살고 있었어요.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세계는 무한히 컸어요." 이 말이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는 말이었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면 이렇게 말이죠.

"나는 별로 장할 것도 없고, 별로 가진 것도 없지만 내가 생각하는 세계는 무한히 넓고 커요"라고 한다거나 "지금까지는 나를 작은 세계에 가둬두고 있어 몰랐지만 이제야 눈을 뜬 것 같아요. 내가 무대로 삼을 수 있는 세계는 무한히 크로 넓어요"라고 말이죠.


* 처음부터 너무 높은 허들 앞에 서서 '넘지 못해''할 수 없어''능력이 안돼'등의 부정적 자아 이미지를 주입해서는 안된다. 성취 가능한 목표를 설정해두고 성취해보는, 무언가 만들어내는, 자신을 이겨내는 그런 긍정적 기억을 하나씩 만들어가야 한다.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연습도 해야 한다.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지키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그런 긍정적인 기억과 실천이 하나둘 쌓일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내부에서는 '나는 믿을 만한 존재다'라는 인식이 자리 잡기 시작한다. 너무 어려워 보이는, 내 능력으로 안 돼 보이는 일이 갑자기 떨어지더라도 긍정적 자아 이미지가 형성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잠깐은 두렵고 위축될 수 있지만, 이내 '전에도 해봤잖아.할 수 있을거야'라는 마음이 들게 되고 '한번 해보자'라는 도전적 자신감이 생길 것이다.


* 가수 김장훈을 인터뷰할때 그가 했던 인상적인 말이 있다. "지는 습관이 생길까 봐 끝까지 해요."좋은 표현이고 필요한 태도다. 경쟁 구도에서 '이겨라, 이겨야 한다'라는 의미가 아니다. 의지가 약해 자꾸 자신에게 져 버릇하는 습관은 나약한 인간을 만든다. 다트머스대학 김용 총장의 "성공한 사람은 능력이 아니라 인내가 있는 사람이다"라는 말이나 MCM 김성주 회장의 "삶은 지능의 게임이 아니라 근면의 게임이다"라는 말의 맥은 서로 통한다. 무언가 성취하려 노력했던 그들은 같은 진리를 깨달았다.


* '목표를 바라보라, 보이지 않더라도 마음으로 점을 찍어두고 바라보라.'내가 던질 목표점을 마음에 찍고 그곳으로 던지라는 이야기다. 나를 달려가게 할 점을 미래의 시간에 찍어두는 것. 그것을 보고 달려야 지키다가도 '여기서 멈출 수 없다'는 투지가 생겨나고, 나태한 자신과 싸울 수 있으며, '한 번 더'를 외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바라보는 것, 마음에 점을 찍고 달려가게 하는 것, 그것이 비전이다. 마음에 비전이 있는 사람은 자신 스스로 성공을 정의한다. 자신의 삶에 의미를 주는 성공을 스스로 재정의하는 것이다. 행해서 달려갈 목표점, 비전이 자신이 생각하기에 포기할 수 없는 가치로 분명하게 설정되어 있는 사람은 혹시 중간에 지쳐도 크리티컬 매스를 달성할 때까지 그 푯대를 향해 달려갈 수 있다. 그리고 궁극에는 크리티컬 매스를 폭발시켜 도약할 수 있다.


*  시행착오 없이 살기를 바라는가. 그것은 교만한 바람이다. 부딪히고 넘어지고 일어서면서 다가올 기회를 기다리며 준히해야 한다.


* 그늘에서 일어서지 못하고 있다면, 일어서고 싶지만 자꾸 주저앉는다면, 자기 자신에게 따뜻하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보라. '너 왜 그러니?넌 할 수 있어!' 물론 운동이라는 내 작은 경험이 지금 당신이 걱정하고 있는 당신의 미래와 관련한 그 무엇에 비해 사소한 것으로, 혹은 덜 중요한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인생의 성패는 능력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그 문제를 대하는 태도에서 판가름이 난다. 단지 능력이 부족해서 일어서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대하는가하는 태도에 달렸다. 성공한 이들에게서 보이는 공통점은 바로 이 지점에서 남다른 태도를 취한다는 것이다.


*  제 배 속에 영어 사전 하나가 들어있습니다. 우선 영어를 배워야 되겠다 싶어서 열심히 공부했어요. 그런데 영어 사전 한 페이지를 하루 종일 외우고 돌아서면 다 잊어버리는 거예요. 너무 화가 나서 다시 이 사전을 못 본다면 더 정신 차리고 외우겠지 싶어서 한 페이지를 외운 다음 불에 태워 물에 넣어 마셔버렸습니다...그래도 불안했어요. 그래서 기도라는 것을 평생 처음 해봤어요. 

기도라는 것도 어떻게 하는 건지 몰랐죠. 이렇게 기도했죠. '하나님, 안녕하세요? 진지 잡수셨어요? 잘 계시죠?' 저도 잘 있어요. 그런데 제가 검정고시를 공부하는데 어려워요. 좀 도와주세요. 그러면 나중에 도와드릴께요.' 참 바보 같죠? 그만큼 절박했어요. 그렇게라도 내게 믿음을 주어야 했습니다.


* 중용에 이런 말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난 또 한번 혼자 무언가 대단한 것을 발련한 듯 기뻤다. "유불학, 학지불능불조야. 유불문, 문지불지불조야.유불사, 사지불득불조야" 풀이하면 이런 말이다. "배우지 않는다면 모를까, 일단 배우기로 했으면 능통하기 전에는 그만두지 않는다. 묻지 않으면 모를까, 일단 묻기로 했으면 제대로 이해가기 전에는 그만두지 않는다. 생각하지 않으면 모를까, 일단 생각하기로 했으면 확실히 답을 얻기 전에는 그만두지 않는다."

'남이 열 번에 할 수 있을지라도 나는 천 번이라도 해야 한다.' 이렇게 마음먹으면 무엇이 불가능하겠는가.우리는 '남이 천 번에 하는 것을 한 번에 할 방법은 없을까'하고 그 빠른 방법만, 때로는 쉬운 길만 찾으려 감나무 밑에서 입을 벌리고 누워 있었던 것은 아닐까?앞서가는 그들을 질시하고 잘 안 풀리는 자신의 불운만 탓하며 말이다.


* "긍정적인 사로방식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왜냐하면 다 생각하기 나름이거든요.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른 겁니다. 생각하기 나름이예요."
"맞아요. 생각이 중요합니다. 생각을 바꾸면 말도 바꿀 수 있어요. 정말 놀라운 일이죠. 그래서 이런 말도 있습니다. 사람은 사랑, 즐거움, 삶 그리고 나눔에 대한 생각을 해야 한다고."
"사랑, 즐거움, 삶, 나눔이요." "그중에서도 즐거움, 즉 많이 웃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죠. ..우머 감각은 아주 중요해요."


*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린 것이다!" 삶은 해석이다.


* 내 가슴에 손을 얹고 질문해봅니다. '나 뜨겁게 사랑해보았는가?' 내 가슴이 대답을 하네요. '응. 나 뜨겁게 사랑하고 있어. 난 내 삶을 뜨겁게 사랑해.'

물론, 한 십 년 전, 내게 이 질문을 했다면 대답은 달랐을 수도 있습니다. 부딪히고 쟁취하고 그러다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고, 열심히 삶을 살아내다보디 그렇게 살아낸, 지켜낸 삶이 더욱 소중해진 거죠. 그래서 이제 말합니다. '나, 내 삶을 뜨겁게 사랑한다'고.

언젠가 친구 한 명이 대뜸 내게 이런 질문을 했어요.

"넌 실패를 어떻게 해석하니?" 

"갑자기 무슨?" 그 친구는 사실 내 다답을 구하기 전에 자신의 대답을 하고 있었죠.

"난 실패도 내 자산이라고 생각해. 이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내가 좋아."

혹시, 이 말이 쉬울 것 같으세요? 쉽지 않은 말이죠. 알죠. 우리 모두. 그런데 정말 이 말이 내 진심이 될 때 진정 강해지기 시작하는 것이겠죠. 실패는 아프죠. 괴롭죠. 그래서 할 수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거두소서'라고 기도하고 싶죠. 그러나 단언한건대, 모든 인생은 실패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차라리 이렇게 기도해야겠죠.'능히 이려낼 수 있게 하소서'라고.

실패도 자산이라고 자신 있개 말한 그 친구가 이런 말을 또 덧붙였어요.

"결국 우리가 살아내는 데 필요한 건 두 가지야."

"뭐야? 그 두가지가?"

"실력과 맷집."


*  자신의 능력 부족에 대한 냉철한 반성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흔히 '세상이 불합리해서 나를 몰라준다'거나 '때를 잘못 만나 성공하지 못했다'는 식의 착각을 하곤 한다. 여기에 자신에게만 지나치게 너그러운 과대평가까지 더해지면 최악이다. 물론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자신감은 나를 키우는 훌륭한 자양분이다. 그러나 자신감에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칭찬은 냉정한 평가 뒤에 나와야 한다. 근거와 냉정한 평가 뒤에 따르는 자신감과 칭찬만이 나를 살리는 자양분이 될 것이다. 자학과 위축의 과소평가도 지양해야 하지만, 근거 없는 과대평가가 내 앞을 가로막고 있지만 않은지 곱씹어보아야 한다. 곰곰이..


*  탐험가 박영석은 원정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그냥 버텼어요. 아침이 되면 저는 그냥 로봇이에요. 극점을 찾아가는 로봇. 제 감정도 없고 이성도 없어요. 그냥 GPS 보고 나침반 보고 해 보고 그림자 보면서 찾아가는 로봇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야만이 찾아갈 수 있습니다. 안 해본 사람은 모르죠. 자기 감정을 다 없애야 해요. 내 감정을. 저는 대원들이 아프더라도 빈 썰매를 끌고 가게 합니다. 이 대훤 한명 때문에 전 대원이 실패하게 되잖아요. 이 친구 때문에 구조 헬기를 띄우면, 한 번 부르는 데 2억 원입니다. 부르지 못하죠. 어떤 목표가 있으면 목표를 행해 흔들림 없이 가야 하지 않습니까. 목표가 자꾸 바뀌면 인생도 혼란스러워지잖아요. 저희는 무조건 갑니다. 자기 자신과 숱하게 싸우면서 가는 거예요. 극점에 갈 때까지. 정상에 올라갈 때까지. 자기 자신과 타협을 하는 순간 그 원정은 끝입니다. 절대 성공할 수가 없어요."


* 팝스타 빌리 조엘이 무명시절, 이혼, 사기꾼 프로듀서 때문에 겪은 좌절 등 시련은 끝이 없어 보였다. 자살 시도가 미수에 그친 뒤에는 정신병원에 들어가야 했다. 그런데 그가 남들은 끝났다고 여긴 정신병원에서 희망의 끈을 붙잡고 일어서서 나온 것이다. 그는 정신병원에서 자신보다 더한 중증 환자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나만이 최악이 아니다. 아직 내가 다 잃은 것은 아니다." 그는 남들이 최악의 상황이라고 하는 고난의 순간을 내가 뛰어넘을 수 없는, 대단한 그 무엇으로 숭배하지 않고 무시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뛰어 넘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아는 빌리 조엘이 되었다.

상황이 어려울 수 있다. 오약하게도 고통이나 어려움이 삼각파도를 이루고 떼로 달려들어 사람을 그로기 상태에 몰아넣기도 한다. 그러나 헤치고 나오는 사람이 있다. 어떻게 그랬을까? 빌리 조엘의 사연 속에서 이미 해답을 찾았을 것이다. 어려운가, 지금? 혹시 고통스러운가, 지금? 고통만 바로 보지 말라. 고통을 숭배하지 말라. 고통이 거인처럼 커지도록 방치하지 말아야 한다. 끊어내라. 당신이 더 크다. 더 큰 당신이 이겨낼 수 있다.


*  힙합 하나만을 붙들고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타이거JK에게 15년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고질적인 질병에, '내가 뭘 알아'하는 주변의 냉소, 거리 공연에서 겪은 관객의 폭력...견딘다 해도 한두 번이다. 두세 번 겪고 나면 포기하고 싶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포기하지 않더라고 마음속엔 온통 부정적 생각이 가득 차기 마련이다. 타이거 JK, 그도 고백한다. 마음속에 피해망상, 자격지심, 포기, 원망, 분노, 이런 부정적인 생각뿐이었다고. 그러나 그는 그렇게 부정적인 생각에 자신을 묶어두지 않았다.

"그러나 그만둘 수 없었어요. 어느 날 많은 것이 변하기 시작했죠. 이제 사람들은 잘되었다고 하지만 제 기준에서는 그 꿈이 아직도 남아 있어요. 그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 걸 많이 느꼈어요. '내가 노력한 만큼 왜 얻지 못할까?' '왜 주목받지 못할까' 하는 것들을 항상 느꼈는데요. 사람들은 누구나 열심히 하고 또 노력을 진짜 열심히 하면 그 운이 맞아 떨어지는 시점이 오는 것 같아요. 그런데 너무 일찍 포기하거나 체념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힘들지만 혹시 그 타이밍이 지금이 아닌가..그 타이밍이 지금일 수도 있죠."




* "수컷의 속성을 알면서도 암컷의 속성을 지키면 천하의 골짜기가 된다"

한 번  더 읽어보라. 이 문장을 읽어보면 어떤 단어가 떠오르는가. 통섭, 디지로그, 중성의 시대.., 이런 말이 생각나지 않는가. 나는 이 문장을 처음 접하고는 평소에 큰소리로 외쳐 주장하던 바를 뒷받침할 든든한 후원운을 하나 더 얻었다는 생각에 쾌재를 부르며 무릎을 쳤다. 이말은 <도덕경>의 한 구절이다. 노자는 기원전 6, 7세기의 인물이다. 우리 시대와 무려 2,700여 년 떨어진 시대, 오늘날의 사람들이 상상하기도 힘든 옛 시대에 살던 인물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우리 시대가 화두로 삼고 있는 가치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이야기를 그때 이미 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 봐, 인류를 관통하는 핵심 진리는 몇 개 되지 않아!'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Key concept' 는 몇 개 되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Key concept'만 제대로 파악해도 내가 살아갈 미래를 선도할 가치가 무엇인지 예측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으니 기쁠 수밖에.

노자의 말을 조금 풀어보면 이런 말일 테다. 남성성(강건함, 추진력 등으로 대표되는)을 잘 알면서도 여성성(섬세함, 감수성, 유연함으로 표현되는)을 지키면 세상 사람들과 만물이 와서 깃들 만한 넉넉한 골짜기가 된다. 이는 학문과 학문을 넘나들며 아우르는 통홥된 지식을 가져야 한다는 '통섭'의 개념이나 디지털 시대에도 아날로그의 감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디지로그'의 개념, 뛰어난 경영자나 정치인의 리더십은 남성성과 여성성, 차가움과 뜨거움을 겸비해야 한다는 리더십에 대한 새로운 담론 등,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낭 'hot'한 것으로 회자되는 주제들과 정확히 같은 것이다. 이미 여러 번 박복해 말했지만, 동서고금을 통해 반복되는 것은 '진실에 가까운 무엇이다!' 눈 크게 뜨고 들여다보아야 할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





* 조급할 것 없다. 옆을 두리번거리며 비교하고 불안해할 필요도 없다. 세상에 아름다운 꽃은 수만 가지가 넘고 개화하는 계절과 피어나는 속도도 제각각이다. 인생의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성의 문제고 열매의 문제다. 이미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볼 필요도 없다. 후회는 독이다. 끊어버려야 한다. 이제 다만 그대 안을 들여대 보고 살펴보라. 그대 자신과 새롭게 독대하라. 그리고 스스로에게 가장 확실한 신뢰를 얹어 말해주어야 한다. 

'할 수 있다. 믿는다.'


99퍼센트까지 채우고 1퍼센트만을 못 채워 주저않았던 그대, 이제 그 1퍼센트만 채우면 된다. 당신 안의 씨앗은 이제 개화할 것이다. 혹시 지치는 말, 혹시 혼자 달리기 외로운 날, 혹시 문뜩 두려움이 찾아오는 날, 가슴속으로 소리치라. 크리티컬 매스! 마지막1퍼센트!

12. 7. 3.

책 뜨겁게 안녕

다 지나쳐 가라. 반드시 그칠 날이 올 것이다. 그 희망만이, 내 편이다. 그것만이 내 것이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어도 그 희망만은 내것이다.  - 뜨겁게안녕 -

12. 6. 30.

안철수, 박경철 그리고 김제동

안철수씨와 박경철가 출연하는 MBC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는데, 거기서 나왔던 질문들과
마음에 와닿는 답변을 몇자 적어볼까해.



1. 21세기 리더쉽이란?

21세기 이전 리더쉽은 리더가 대중을 선택하고 이끌어 가던시대였다면, 21세기 리더쉽은대중이 리더를 선택하는 시대이다. 공감과 연대 수직이 아닌 수평 직렬이 아닌 병렬의 마인드를 가진사람만이 새로운 리더쉽의 주인이 될수 있다. (예전 읽었던 언리더쉽과 비슷한 내용을 담은 말을 하셨는데, 21세기 리더는 대중에게 나서는 것이 아닌 리더의 존재를 사라지게 만드는것이다라는 구절이 인상깊었어)


2. 시간관리를 어떻게 하시죠?

(안)하루종일 박사논문을 쓴다는는 게 보통일이 아니라 도저히 시간은 없는데, 이건 해야만 되는 일이잖아요. 새벽 시간은 만들 수 있겠더라구요. 그래서 이제 새벽 3시에 일어났어요. 그 다음 날부터 새벽 3시에일어나서 6시까지는 바이러스 백신 만드는 일을 하고 나머지는 하루종일 열심히 의사로서의 삶을 살았던

그게 시작이 됐던 거고요. 처음에 한 두번 하면 끝날 줄 알았는데 7년 내내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이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그런데 그게 아마 보통 같았으면 없었을 시간이죠. 자고 있었겠죠. 그런 경험들을 몇 번 하다 보니까 제가 깨달았던 게 시간은 절대적인 게 아니더라구요. 절대적으로 주어지고 모든 사람한테 똑같은 게 시간이 아니라 시간은 상대적이고요. 시간은 만들면 만들어져요.

3. 안철수씨, 박경철씨는 안정적인 의사라는 직업을 버리고 새로운 도전을 하셨는데요. 당시 그런 도전을 하실때 따라오는 실패에 대한 리스크때문에 두려워 하시거나 그런것은 없으신가요. 어떻게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계시죠?

안정(보증)이라는것은 흔히 물건에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것 같아요. 물건에 비유를 해보도록 하죠.
우리가 흔히 개런티(보증)라고 말을 할 때 예를들어 자동차의 개런티는 품질보증이 있죠. 보증이라는 것은 자동차를 살때 3년간 품질보증 개런티 카드를 받잖아요. 이건 물건에 대한 거잖아요. 보증이라는 것은 내 인생에 대한 책임을 개런티로 해결할 수는 없잖아요. 내 인생의 가치는 뭔가 달라지기 위해서 노력하는 거고 어제보다 오늘이 달라야 되고 오늘보다 내일이 달라야 하는데, 어떻게 안정이고 보증이고

"현재 이건 충분해 "라는 '난 이만하면 됐어'라는 보증과 안정이 내 삶을 결정짓는 요소는 전혀 아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의사라는 안정된 직업을' 이라는 전제는 일단 틀린 것이고 두번째 다른 일을 할 때의 선택은 현재 어떤 것을 소홀히 하거나 그것을 다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것이 자신 없으니까 다른일을 해볼까?' '이건 내 적성에 맞니 않다'이렇게 말하는 데서 사실은 적성에 맞지 않는것이 아니라 이것을 잘할 자신이 없다는것을 스스로 내가 위선을 떨고 있진 않는가에 대한 자문을 해봐야 합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고, 충분히 잘할 수 있을 때 다른 기회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지 현재를 회피하기 위해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 말한 최선이란 말의 정의를 대한민국에서 가장 완벽하게 하신 분은 조정래 선생님입니다. "최선이라는 말은 이 순간 내 자신의 노력이 나를 감동 시킬 수 있을 때 쓸수 있는 말이다" 돌아보죠 내 노력이 나를 감동시킨적이 얼마나 있는가?


4. "기업은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다"이말이 옳바른 기업정신 일까요?

'기업의 목적은 수익창출이다'그게 국민 상식 같죠? 그런데 사실 그건 틀린 말이예요. 왜 그런가 하면..
예를들어 기업의 목적이 수익창출이라는 걸 너무 지나치게 믿고 그쪽 방향으로 가다보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수익만 창출하면 된다고 스스로 정당화할 수도 있잖아요?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면(예를들면) 불량식품을 만들어요.

그러면 자기는 돈을 버는데 그 불량 식품을 먹고 수많은 어린이들이 아프고 사회가 나빠지잖아요. 사회 전체로 보면 그건 오히려 없는게 더 좋은 암적인 존재, 범죄집단이잖아요. 사실은 가장 중요한 것 하나만 꼽으라고 하면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인식하고 할께 살아가는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죠.


5. 특별한 자녀교육?

자녀에게 사랑 받고 자랐다는 기억을 심어줄 것!(박)
가장 중요한 것은 가치관, 결론 짓는 답은 하지 않는다.(박)
자녀에게 절대 강요하지 않는다. 본인이 원하는 것을 스스로 찾도록!(안)


6. "도전, 용기,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라고 얘기하기에는 미안한 시대?

(박)"늘 도전하라 용기 내라 또 과감히 남이 가지 않을 길을 가거라" 라고 얘기하기엔 좀 미안한 시대 개개인이 열심히 노력하면 이 문제들을 다 해결할 수 있느냐 현상을 바라보지 않고 본질만 보면 본질은 굉장히 단순합니다. 뭔가 독점과 과점이 이루어져 있다.우리가 전체를 다 얘기할 수는 없으니까 기회 문제만 보죠. 재벌 기업을 보세요. 큰 따님이 광고 회사를 차립니다. 그 그룹의 모든 광고를 가져갑니다. 심지어는 해외 광고까지 다 가져갑니다. 순식간에 국내 1,2위의 광고 회사로 성장을 하죠. 큰 따님은 큰 부자가 되시죠. 그런데 그 과정 속에서 광고를 꿈꾸는 젊은 광고인으로서 내가 작은 광고 회사로 성장해서 언젠가 내가 광고를 재패하겠다는 그 사람들에게 젋은 청년들의 기회는 그걸로 인해 다 사라졌습니다. 그런 기회들을 전 대기업들이 만들면 수많은 벤처를 꿈꿨던 젊은 이들과 벤처기업들은 아무것도 없이 그 밑에 종속되어서 미래가 없는 희망없이 주저앉고 이런 이들이 독점 구조 속에서 일어나는 우리는 인지하지 못하는 거대한 피해잖아요.

(김)그런 얘기도 합니다. 사실 어떤 분들은 눈높이 좀 낮춰라 중소기업에는 일할 사람이 없다.

(박)중소기업도 내가 지금 가서 일을 했을 때 지금은 미약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높은 성과를(인정받고) 우리 같이 회사가 성장하고 나의 미래도 발전할 수 있다고 믿으면 저는 과감하게 청년들에게 얘기하겠습니다. 명문대 비싼 학비 내서 가지말고 중소기업 가세요. 그런데 (대기업 수익률은) 2010년 2009년 이후로 창사 이래 최고입니다. 그러면 그에 관련된 협력업체나 하청업체는 창사 이래 최고의 수익을 내는게 맞잖아요. 그런데 3년간 적자입니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까 더 재미있습니다. 혹시 이익을 냈다고 하면 단가를 낯추라고 할까 봐 어떻게든지 이윤을 줄어야만 했다. 이 모습에서 중소기업의 미래 그런 회사를 다니시겠습까?

(안)대기업, 중소기업 간의 그런 대우 격차가 지금 정도로 과도하고 비정상적으로 심하지 않는 상태면 자기가 원하는 직업을 택할 수가 있는 것이거든요. 그런 구조만 된다면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고 지금 현재 대학교까지 좋업한 사람들을 막노동판에 일자리 있는데 왜 거기 안 가느냐라고 하는것은,
그건 굉장히 잘못된 사고방식이라고 봅니다. 그런 것들이 그 전체 조직 시스템을 관장하는 분들이 고민해야 되는 몫인 거죠.

(박)투 트랙으로 한쪽에서는 자기 자신이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그 토양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지금까지 부당하게 편중되어 왔던 시혜와 특혜와 그리고 그에 따른 관용까지도 평등화애서 같이 나누는 것이 투 트랙으로 맞는 방법이니까 이제 이것을 고민하고 나아가면 되는 거죠.

(안)문제를 풀기 위해서 가장 선제 조건은 그 문제 인식의 공유거든요. 문제가 있다고 같이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면 문제 해결은 아예 시작이 안되는 거죠. 그래서 이런 문제가 있다는 걸 함께 공유해보자는 게 이런 강연의 목적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 나 자신에게 감동을 준 최선이라는것을 나는 언제 해봤을까?
입시할때 남들보다 2배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아서..2시간 일찍, 그리고 2시간 늦게까지 남아서 했던 기억이 나는 감동시킨적이 있다.

그리고..예전에 인디밴드 포스터를 디자인하고 싶은데, 주변에 음악 하는 사람들이 없어 무작정
명함과 전단지를 만들어서, 홍대와 대학로 주변에 붙이러 다니고 기타를 매고 있는 사람이라면 말을 걸어 명함도 주고, 실용음악학원에가서 전단지 붙이고 명함도 주면서 나를 감동시킨적이 있다.그리고..영어 공부한다고 하루 일찍 일어나서 도서관에 달려가 공부를 했고, 코피도 쏫으면서 공부했던 기억이 나를 감동시킨적이 있다.

그런데 이런 노력에 비해 결과가 좋은편은 아니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대체 무엇이 문제여서 노력에 비해 결과가 좋지 못한걸까?..아마도 그 미친노력이 3달이상 지속되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점, 너무 한쪽에만 치중해서 균형있게 발전이 필요한데 그렇게 하지 못한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번에는 정말 달라지고 싶다..너무 괴롭다 달라지고 싶다.

너에게는 미친노력은 있지만 꾸준히 하는 근성은 많이 부족하다. 이번에는 근성을 기르고 무슨일이 있든 노력과 함께 완주하자!

12. 6. 28.

유튜브 '2조 대박男' 지금 허름한 사무실서…



유튜브를 만들어 무려 2조원에 매각한 남자가 달랑 200만원 밖에 없던 시절로 다시 돌아갔다. 그것도 본인이 선택해서 말이다. 바로 스티브 첸(34).

그는 2006년 유튜브를 16억5000만 달러에 구글에 매각하면서 '억만장자 구글러'가 되었다. 그런 그가 뭐가 아쉬웠는지 보장된 삶을 뒤로 하고 2010년 말 구글을 떠나 실리콘밸리 산마테오(San Mateo)의 허름한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곳은 그가 유튜브를 처음 시작했던 곳. 대학을 중퇴하고 단돈 200달러와 담요 한 장 들고 실리콘밸리로 무작정 상경했던 그 시절의 설렘을 찾아서.

기자는 지난 20일 산마테오의 아보스(AVOS)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아보스는 스티브 첸이 유튜브의 공동창업자인 채드 헐리와 함께 구글을 나와 만든 회사이다. 세상 사람들과 실리콘밸리의 궁금증과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곳. 도대체 아보스는 또 어떤 '대형사고'를 칠까?

스티브 첸이 대한민국 젊은이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 그리고 그가 준비중인, 유튜브를 넘어선 새로운 인터넷서비스에 대해 언론사 최초로 인터뷰한 내용을 2회에 걸쳐 소개한다.



아보스 사무실은 생각보다 초라했다. 유일한 사치가 바로 입구의 당구대 하나. 2층으로 올라가는 작은 유리문에 'AVOS'라고 새겨진 표시가 회사를 안내하는 전부였다. 200여 평 휑한 사무실에는 있어야 할 것만 있었다. 책상, 컴퓨터, 소형캐비닛 그리고 사람들. 그의 방이 별도로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산마테오 자체가 실리콘밸리에서는 외진 동네이다.

그런데 왜 이런 곳일까? 돈이야 어마어마하게 많을 텐데 말이다. 그가 이곳에 돌아왔을 때 인근 식당주인, 카페점원들이 따뜻하게 맞아주었다고 한다. 그것도 그가 이곳으로 돌아온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어릴 때 나고 자랐던 고향 같은 곳이랄까? 유튜브를 시작했던 곳이거든요." 그는 코딩으로 밤을 새우고, 신용카드 돌려 막기를 하며 가슴 졸이던, 그런 유튜브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것이다.

"동영상이 뭔지도 모르고 유튜브 시작했다"
모두 다 갖춰서 시작한다는 것은 이미 시작이 아니다. 아니, 다 준비되고 나서 시작하겠다는 것은 시작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그는 유튜브를 아무 준비 없이 시작했다. 동영상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시작했다니까 말이다.

"유튜브를 시작할 때 사실 동영상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어요. 그냥 아이디어였을 뿐이었죠. 슈퍼볼 공연에서 재닛 잭슨의 가슴 노출사고가 있었는데 그 영상을 찾기가 너무 어려웠어요. 이걸 우리가 대신 찾아주면 사람들이 얼마나 고마워할까, 그 정도 생각에서 출발했던 거죠. 페이팔(유튜브 창업이전 몸담았던 온라인결제시스템회사)에서도 마찬가지에요. 다들 온라인결제가 뭔지도 잘 몰랐지만, 꼭 필요한 아이디어였고, 그래서 덤볐고, 그래서 해냈던 겁니다."

오죽했으면 유튜브 창업스토리를 꾸며냈을까. 어떤 스토리도 없었기에, 그저 언뜻 떠오른 아이디어를 실천했던 것뿐이었기에, 수많은 질문에 대한 답으로 창업스토리를 그럴싸하게 꾸며댈 수밖에 없었다. "샌프란시스코의 한 파티에서 찍은 동영상을 참석자들과 공유할 방법이 없어서 동영상 사이트를 만들게 됐다는, 지금까지 알려진 스토리는 사실 홍보 차원에서 만들어낸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힘주어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저한테 와서 한참 아이디어를 설명하고 나서는 이렇게 말해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아니 어떻게 해야 하다니요? 정답은 분명하거든요. 그냥 직장 그만두고 나와서 회사를 만들면 됩니다. 해답은 뻔해요. 그런데 사람들이 그렇게 못해요. 실패할까 무섭거든요. 그래서 말씀 드리고 싶은 겁니다. 실패할까 두려워하지 말고 일단 한번 해보라고 말이죠(not being afraid to fail, that's the key to just try)."

"문제를 찾고 해결하는 것이 가장 재미 있다"
20대에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난 이후 그의 인생이 화려하게만 펼쳐진 것은 아니다. 그는 2007년 출장 갔다가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기절을 했고, 이어 뇌종양 판정을 받았다. 성공의 정점에서 말이다.

"발작이란 것이 꼭 밤에만 일어나더라고요. 아침에 눈을 뜨면 이게 꿈인가, 현실인가 했는데, 둘러보면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응급실인 겁니다. 수술을 하고 난 후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말이죠. 왜 '오늘 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살아라'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그는 하고 싶은 것을 찾아다닌 적이 있다.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겠다는 굳은 결심과 함께. 그는 요리와 골프, 카메라에 푹 빠졌다. "가장 비싼 골프채를 사고, 가장 비싼 카메라를 샀죠. 그런데 재미가 없더라고요. 재미를 못 느끼니깐 늘지도 않아요. 또 한번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고민했죠. 뭔지 아세요? 바로 문제를 찾고 해결하는 것이더라고요."

유튜브로 세상을 바꾼 스티브 첸은 자기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 '문제를 찾고 해결하는 것'이라고 했다. '세상에 없는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거창한 것도 아니고, "실제 삶에 있어서 불편하고 힘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이야말로 엔지니어의 본질이 아닐까.

"구글에 있을 때 채드와 저는 문을 잠그고 수많은 아이디어에 대해 얘기를 했죠. 우리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수많은 문제들 말입니다. 그래서 함께 구글을 떠나기로 했죠. 구글이 참 좋은 직장이긴 하지만, 앞으로도 내가 후회하지 않고 일할 수 있을까, 자문해보니까 잘 모르겠더라고요. 우리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지는 몰랐어요. 근데 뭔가를 하고 싶었어요."



"시장가치? 난 모른다. 코딩할 수 있어 행복하다"
사실 기자가 그를 만나면서 가장 궁금했던 것은 그가 얼마를 벌었냐는 것이었다. 차마 대놓고 그 질문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돌려 물었다. '실리콘밸리가 돈으로 넘치는 버블의 계곡이 된 것은 아닌지' 말이다. 그랬더니, 그는 세계적 요리사 코리 리(Corey Lee) 이야기를 꺼냈다. 한국계 미국인인 코리 리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레스토랑 가운데 하나인 캘리포니아 나파밸리 '프렌치 론드리(French Laundry)의 수석 조리장이다.

"제가 코리와 참 친한데, 어느 날 흥분해서 묻더군요. 어떻게 유튜브가 16억 달러나 될 수 있냐고 말이죠. 자기도 똑같이 새벽 6시에 일어나 다음날 새벽 3시에 잠자리에 들며 열심히 일하는데, 어떻게 아이폰 앱 하나가, 사이트 하나가 상상도 할 수 없는 가치가 될 수 있냐는 거죠. 제가 답했죠. 나도 잘 모르겠다고. 시장가치라는 것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유튜브 매각협상 때 '데니스'(미국의 대중패밀리레스토랑. 그는 20달러만 있으면 배 부르게 먹을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에서 야후의 제리 양을 만났고 바로 다음 날에 구글의 에릭 슈미트를 만났어요. 그리고 구글과 계약했죠. 그런데 어떻게 유튜브가 전세계 데니스의 가치보다 4배나 더 높을 수 있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엔지니어인 그에게 돈은 숫자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일을 한 것이니까.

그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그때 유튜브를 구글에 매각하지 않았다면 돈을 더 많이 벌었을 것 아니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고 말했다. "회사를 팔고 직원들에게 물어봤죠. 모두가 행복하다고 했어요. 주말까지 밤새워 일하면서 지쳤던 거죠. 하지만 또 하나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이유도 있었어요. 구글을 통해서 모바일 서비스를 하고, 번역기능을 제공하는 것 말이죠. 그걸 모두가 알고 있었던 거죠. 직원들이 행복하게 코딩할 수 있는 것, 직원들에게 최선인 것, 그것이 바로 상품에도 최선인 겁니다(what was best for the employees was best for the product)."

스티브 첸에게 '가치'란 시장이 평가하는 가치와는 많이 달랐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코딩하는 것, 그래서 상품을 더 개선할 수 있는 것, 그 속에서 재미를 느끼는 것, 그것이 그에게 가치인 것이다.



"단 한번 만이라도 마음 가는 대로 해보라"
취업도 어렵고, 창업도 어려운, 오도가도 못하는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한 말씀 해달라고 부탁해보았다. 아주 조심스러워했다. 한국을 잘 몰라서가 아니다. 생각보다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그의 부인은 구글코리아에 근무했던 박지현씨이다).

"실리콘밸리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 중퇴하고, 1년에 회사를 네 개나 차리고 모두 실패해도 털고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워낙 많으니까요. 좋은 경험을 쌓았으니 다음 해에 네 개를 더 차리는 거죠. 그런데 제가 태어난 타이완이나(그는 8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한국은 한번 실패하면 영원히 실패하는 겁니다. 그래서 아이디어가 완벽해질 때까지 계속 생각만 합니다. 그러다 결국 아무것도 못하는 거죠. 그래서 어떤 실질적인 스타트업(초기기업)이나, 혁신과 진전이 없습니다. 엔지니어 인적자원이나 교육받은 사람들이 부족해서가 아니에요. 문화의 차이인 것 같아요. 실패를 받아들이는, 또 실패한 사람을 바라보는 태도가 다른 것이죠."

그러면서 그는 중국 이야기를 꺼냈다. "중국은 최근 5~6년간 참 많이 변한 것 같아요. 뭔가 시도해보려는 문화가 생겨나고 있어요. 바이두(중국 최대의 검색엔진)와 텐센트(중국 인터넷서비스업체)를 보세요. 이제 중국에서는 대기업을 관두고 스타트업을 시작한다 해도 더 이상 사회에서 따돌림 받지 않습니다. 한국도 이런 회사들 몇 개만 나와 준다면 폭포처럼 젊은 친구들이 회사를 만들 것이고, 설령 실패를 해도 더 이상 버림받지도 않을 겁니다(you're not social outcast no longer). 문화가 바뀔 거예요. 유튜브를 보세요. 동영상에 관한 한 대기업인 구글을 이겼잖아요. 한국 젊은이들도 도전하면 대기업을 넘어서는 기업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자는 스티브 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 속으로는 그랬다. '실리콘밸리니까 가능하지. 한국 같으면 어림도 없어. 그렇게 '줄창' 실패를 할 수 있는 것도 행운이지. 한국은 한번 실패하면 다시 실패할 기회조차 얻기 힘들어'라고.

그런데 스티브 첸이 한마디 덧붙였다.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이런 말은 꼭 하고 싶네요. 너무 심오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너무 재지 마세요. 마음 가는 대로 한번이라도 해보라는 거죠. 틀리면 어때? 다시 하는 거지 뭐! 이런 자세로 말이죠."

그렇다. 환경만 탓하고 있으면 자신도, 환경도 바꿀 수 없다. 한 방울 한 방울 꽁꽁 언 땅을 내려치다 보면 어느 순간 폭포처럼 쏟아져 언 땅을 녹이고 대로를 만들어버리는 날이 올 것 아닌가.

스티브 첸과의 만남은 마흔이 넘은 기자에게도 울림이 컸다. 모두 다 갖춰야 출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다간 평생 아무것도 못한다. 디테일에 몰입하다 보면 답이 나온다. 그리고 또 하나. 새로운 도전에 나서면서 두려운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믿어라. 두려움을 떨치고 나가면 언젠가 자신도 모르게 그 대열의 가장 앞에 서 있게 될 거라는 것.

*다음 회에는 스티브 첸이 곧 공개할, 유튜브를 넘어선 새로운 서비스에 대한 언론사 최초의 인터뷰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