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11. 22.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Buena Vista Social Club, 1999)




정말 사랑스러운 영화다.
작위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지 않고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노인 음악가들을 한명씩 소개하며, 그들의 음악인생과 삶에 대해서 조용히 음미한다.
알수없는 묘한 감동이 밀려온다.

꽤 유명한 그 이름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그 영화를 미루고 미루다 이제 봤다.

수십년전, 그들이 젊었을때, 쿠바의 한 동네에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이 있었고, 클럽이 문을 닫은후 그들은 조용히 그들의 음악인생을 근근히 유지해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영국의 한 기타리스트는 20년전 들었던 쿠바 음악이 담긴 테잎에 감명을 받아 쿠바 음악을 찾아 다녔지만, 좀처럼 찾기 힘들었다.
그리고, 다시 찾아와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메인 보컬인 이브라힘을 비롯해, 피아니스트 루벤과 그외에도 콘트라베이스, 트럼펫 등의 악기 연주자들을 찾아낸다.
그리고, 그들을 모아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앨범을 내고, 80~90세가 된 그들은 큰 인기를 얻으며 결국 모든 음악가들이 서고 싶어 하는 무대인 카네기홀 에서 성황리에 공연을 해낸다.

아프리카 스타일의 독특한 타악기들이 많고, 유럽등 외국에서 유입되어 쿠바식으로 변형된 각종 악기들이 다양한 밴드.
8살, 9살에 음악을 시작한 사람부터 18살에 음악을 시작한 사람들까지,
그들은 어려서 음악을 시작해 70~90대의 노인들이 되었다.
노래에서 더이상 얻을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이브라힘은 새로운 계기를 만나게 되었고, 관절염이 있어 피아노를 못칠거라는 루벤은 10년동안 피아노 없이 살았지만 여전히 멋진 피아노 연주를 들려준다.

미국말도 아닌 에스파냐어.
무슨 노래인지 알아 들을 수 없어 자막을 봐야 대충 알게 되지만, 음악은 꼭 그 의미를 알지 못해도, 소리만으로도 감흥을 준다.
그래서, 음악이 만국 공통 언어다.
이브라힘의 목소리를 들으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 영화를 어떻게 만들게 되었고, 어떤 의미인지는, 영화 종반부 전에 라이 쿠더가 길게 나레이션 하는 부분에서 설명이 된다.

"이 모든 일은 어떻게 시작됐던가...
어느 날 월드서킷 음반사의 닉 골드가 쿠바에 함께 가자고 제안해 왔다.
아프리카 연주자들과 함께 쿠바음악을 음반으로 만들자고. 신선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난 70년대에도 하바나에 와서 쿠바음악을 찾아 다닌 적이 있었다.
친구가 쿠바음악이 든 테이프를 줬는데, 훌륭한 연주와 노래에 매혹된 것이다.
그건 전혀 색다른 느낌의 음악이었다. 난 여기저기 다니며 옛 곡을 수집했다.
하지만 그땐 뭘 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고, 일단 돌아와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닉의 요청대로 다시 쿠바에 갔는데, 아프리카 연주자들이 일정이 바뀌어 올 수 없게 되었다.
우린 쿠바인들로만 추진해 보기로 하고, 후안의 도움을 받아 사람들을 찾아냈다.
콤파이와 엘리아즈, 이브라힘, 아마디또 피오, 푼틸리타, 카차오, 바바리또.
예전에 날 매혹시켜 쿠바에 처음 오게 한 바로 그 테이프의 류트 연주자가 바바리또 였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난 이들이 살아 있는지도 모른 채 20년동안 그들의 음악을 들어왔다.
루벤은 10년 동안 피아노도 없었다.
사람들은 그가 관절염을 앓아 연주할 수 없다고 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그들을 찾아낸건 정말 대단한 행운이었다.
그들은 잊혀져 있었지만 살아 있었고, 재능과 지식을 아끼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음악에 임했다.
내겐 놀라운 경험이었다.
난 일생을 노력해도 어려운 일이었다.
난 요하킴에게 말했다.
이런 경험은 일생에 한번 있을 거라고.
난 모두를 한 자리에 모아 공연을 하면, 근사할 거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음반이 인기를 얻어 모두가 바쁠 때였다.
모두 모일 수 있는 곳은 암스테르담이었다.
4월 커리 극장에서 2일간 모두 다음은 카네기 홀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언제 뉴욕에 가냐고 내게 물었다.
솔직히 난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노력한 결과, 우린 7월 1일 그 곳에 가게 되었다.
그날 밤은 굉장했다.
우리 모두 기쁨에 넘쳐 열광했다.
그것은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마지막 공연이 될 것이다.
1998년 7월 1일 뉴욕 카네기홀.."

음악을 좋아하고, 음악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는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영화다.
나이가 들어서도 인정과 존경을 받으며 계속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것.
음악인에게 있어 그것이 가장 큰 행복일 것이다.
외국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나이든 음악가가 그리 인정받지 못한다.
그들이 설 무대가 거의 없고, 사회적으로 크게 존경받기 힘들며, 밥걱정 없이 꾸준히 음악한다는 것은 더욱 힘들다.
(트로트, 국악 같은 부류는 제외)
밴드 음악이 별로 인정받지 못하다보니, 밴드 음악은 20대에나 잠깐 하는 음악으로 치부되고, 댄스음악이나 힙합, 한국식 팝만이 팔린다.

물론, 음악가들은 대체로 가난하다.
음악을 한다는 것은 '가난' 을 어느정도 염두에 두어야 할 만큼, 고난이 많은 길이다.

초반부에 이브라힘에 대해 이야기가 진행될때, 이브라힘(메인 보컬)이 하는 말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이브라힘은 나사로 (성경속에 나오는 거지) 신앙을 믿는다고 한다.

" ... (중략) ..
나도 나사로 신앙을 믿거든요.
나사로는 성경에 거지로 나오지요.
그는 위대한 존재예요.
길을 열고...
힘없는 사람들을 도왔죠.
똑같은 이름의 성직자도 있지만...
내가 믿는 건 이 나사로입니다
구걸을 하던 나사로, 난 그에게 꽃을 바치죠.
가끔 촛불도 켜드리고요. 꿀도 바쳐요.
보세요! 벌꿀이에요.
여기 두죠. 향수도 많이 있어요. 정말이에요.
향수가 많죠.
나갈 때마다 뿌려 줘요. 나도 뿌리고.
술도 한 잔 올려요. 나처럼 술을 좋아하실 것 같아서, 술을 한 잔 드리죠.
가끔 아내가 만든 과자도 바쳐요.
어떤 건지 알아요?
그를 본 딴 과자를 만들어 바치는 거죠.
그럼 모두 그의 것이 되는 거죠.
우리 쿠바인들은...감사해야 할 거에요.
저 분 덕에... 이렇게 살고 있으니...
우리가 소유에 집착했다면, 오래 전에 사라졌을 거예요.
쿠바 사람들은 행운아지요.
우리들은 작지만 강해요.
저항하는 걸 배웠어요.
...(중략)..."

이브라힘을 비롯해 다른 음악가들의 생활을 카메라가 쫒아가면서 보여준다.
그들은 지극히 평범, 혹은 매우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성경속에 나오는 거지 '나사로' 를 믿는다는 이브라힘의 말과 함께, 그의 약간 궁핍해 보이는 삶은 묘한 감정에 휩싸이게 한다.

그외에, 영화 초반, 쿠바의 거리 풍경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체게바라의 그림들이 이곳저곳에 있는게 신선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쿠바는 반미 독재정권이다.
체 게바라는 (여기서 '체' 는 실제 이름이 아니라, 게바라 스스로가 붙힌 '어이 친구' 라는 뜻이라고 한다)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당시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혁명가지만,
체게바라가 죽은 이후, 쿠바는 또 독재정권이 된 셈이다.

붙임.
이브라힘 페레르는 2005년 8월 6일 사망.

줄거리 스크랩(네이버)---------------
1999년 영국. 쿠바 음악이 새로운 여름 음악으로 등극하며 레게와 라틴의 자리를 밀어냈다.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쿠바 음악에 심취한 유명한 기타리스트 라이 쿠더(Ry Cooder)는 이름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실력은 가장 뛰어난 쿠바의 뮤지션들을 모아 앨범을 녹음했는데 이것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앨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다. 얼터너티브 음악잡지 ‘SPIN’에서 이 음반을 90년대 명반에 포함시켰다. 이 앨범의 국제적인 성공을 통해 국내와 해외에서 오랫동안 간과되어 온 베테랑 뮤지션들의 이력이 다시 살아나게 되었다. 그 뮤지션 가운데에서, 가수 이브라힘 페레 Ibrahim Ferre와 피아니스트 루벤 곤잘레즈 Ruben Gonzalez는 새 작품을 녹음, 발표했다. 90세의 나이로 이 뮤지션들은 여전히 창조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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