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6. 28.
유튜브 '2조 대박男' 지금 허름한 사무실서…
유튜브를 만들어 무려 2조원에 매각한 남자가 달랑 200만원 밖에 없던 시절로 다시 돌아갔다. 그것도 본인이 선택해서 말이다. 바로 스티브 첸(34).
그는 2006년 유튜브를 16억5000만 달러에 구글에 매각하면서 '억만장자 구글러'가 되었다. 그런 그가 뭐가 아쉬웠는지 보장된 삶을 뒤로 하고 2010년 말 구글을 떠나 실리콘밸리 산마테오(San Mateo)의 허름한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곳은 그가 유튜브를 처음 시작했던 곳. 대학을 중퇴하고 단돈 200달러와 담요 한 장 들고 실리콘밸리로 무작정 상경했던 그 시절의 설렘을 찾아서.
기자는 지난 20일 산마테오의 아보스(AVOS)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아보스는 스티브 첸이 유튜브의 공동창업자인 채드 헐리와 함께 구글을 나와 만든 회사이다. 세상 사람들과 실리콘밸리의 궁금증과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곳. 도대체 아보스는 또 어떤 '대형사고'를 칠까?
스티브 첸이 대한민국 젊은이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 그리고 그가 준비중인, 유튜브를 넘어선 새로운 인터넷서비스에 대해 언론사 최초로 인터뷰한 내용을 2회에 걸쳐 소개한다.
아보스 사무실은 생각보다 초라했다. 유일한 사치가 바로 입구의 당구대 하나. 2층으로 올라가는 작은 유리문에 'AVOS'라고 새겨진 표시가 회사를 안내하는 전부였다. 200여 평 휑한 사무실에는 있어야 할 것만 있었다. 책상, 컴퓨터, 소형캐비닛 그리고 사람들. 그의 방이 별도로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산마테오 자체가 실리콘밸리에서는 외진 동네이다.
그런데 왜 이런 곳일까? 돈이야 어마어마하게 많을 텐데 말이다. 그가 이곳에 돌아왔을 때 인근 식당주인, 카페점원들이 따뜻하게 맞아주었다고 한다. 그것도 그가 이곳으로 돌아온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어릴 때 나고 자랐던 고향 같은 곳이랄까? 유튜브를 시작했던 곳이거든요." 그는 코딩으로 밤을 새우고, 신용카드 돌려 막기를 하며 가슴 졸이던, 그런 유튜브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것이다.
"동영상이 뭔지도 모르고 유튜브 시작했다"
모두 다 갖춰서 시작한다는 것은 이미 시작이 아니다. 아니, 다 준비되고 나서 시작하겠다는 것은 시작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그는 유튜브를 아무 준비 없이 시작했다. 동영상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시작했다니까 말이다.
"유튜브를 시작할 때 사실 동영상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어요. 그냥 아이디어였을 뿐이었죠. 슈퍼볼 공연에서 재닛 잭슨의 가슴 노출사고가 있었는데 그 영상을 찾기가 너무 어려웠어요. 이걸 우리가 대신 찾아주면 사람들이 얼마나 고마워할까, 그 정도 생각에서 출발했던 거죠. 페이팔(유튜브 창업이전 몸담았던 온라인결제시스템회사)에서도 마찬가지에요. 다들 온라인결제가 뭔지도 잘 몰랐지만, 꼭 필요한 아이디어였고, 그래서 덤볐고, 그래서 해냈던 겁니다."
오죽했으면 유튜브 창업스토리를 꾸며냈을까. 어떤 스토리도 없었기에, 그저 언뜻 떠오른 아이디어를 실천했던 것뿐이었기에, 수많은 질문에 대한 답으로 창업스토리를 그럴싸하게 꾸며댈 수밖에 없었다. "샌프란시스코의 한 파티에서 찍은 동영상을 참석자들과 공유할 방법이 없어서 동영상 사이트를 만들게 됐다는, 지금까지 알려진 스토리는 사실 홍보 차원에서 만들어낸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힘주어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저한테 와서 한참 아이디어를 설명하고 나서는 이렇게 말해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아니 어떻게 해야 하다니요? 정답은 분명하거든요. 그냥 직장 그만두고 나와서 회사를 만들면 됩니다. 해답은 뻔해요. 그런데 사람들이 그렇게 못해요. 실패할까 무섭거든요. 그래서 말씀 드리고 싶은 겁니다. 실패할까 두려워하지 말고 일단 한번 해보라고 말이죠(not being afraid to fail, that's the key to just try)."
"문제를 찾고 해결하는 것이 가장 재미 있다"
20대에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난 이후 그의 인생이 화려하게만 펼쳐진 것은 아니다. 그는 2007년 출장 갔다가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기절을 했고, 이어 뇌종양 판정을 받았다. 성공의 정점에서 말이다.
"발작이란 것이 꼭 밤에만 일어나더라고요. 아침에 눈을 뜨면 이게 꿈인가, 현실인가 했는데, 둘러보면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응급실인 겁니다. 수술을 하고 난 후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말이죠. 왜 '오늘 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살아라'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그는 하고 싶은 것을 찾아다닌 적이 있다.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겠다는 굳은 결심과 함께. 그는 요리와 골프, 카메라에 푹 빠졌다. "가장 비싼 골프채를 사고, 가장 비싼 카메라를 샀죠. 그런데 재미가 없더라고요. 재미를 못 느끼니깐 늘지도 않아요. 또 한번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고민했죠. 뭔지 아세요? 바로 문제를 찾고 해결하는 것이더라고요."
유튜브로 세상을 바꾼 스티브 첸은 자기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 '문제를 찾고 해결하는 것'이라고 했다. '세상에 없는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거창한 것도 아니고, "실제 삶에 있어서 불편하고 힘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이야말로 엔지니어의 본질이 아닐까.
"구글에 있을 때 채드와 저는 문을 잠그고 수많은 아이디어에 대해 얘기를 했죠. 우리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수많은 문제들 말입니다. 그래서 함께 구글을 떠나기로 했죠. 구글이 참 좋은 직장이긴 하지만, 앞으로도 내가 후회하지 않고 일할 수 있을까, 자문해보니까 잘 모르겠더라고요. 우리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지는 몰랐어요. 근데 뭔가를 하고 싶었어요."
"시장가치? 난 모른다. 코딩할 수 있어 행복하다"
사실 기자가 그를 만나면서 가장 궁금했던 것은 그가 얼마를 벌었냐는 것이었다. 차마 대놓고 그 질문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돌려 물었다. '실리콘밸리가 돈으로 넘치는 버블의 계곡이 된 것은 아닌지' 말이다. 그랬더니, 그는 세계적 요리사 코리 리(Corey Lee) 이야기를 꺼냈다. 한국계 미국인인 코리 리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레스토랑 가운데 하나인 캘리포니아 나파밸리 '프렌치 론드리(French Laundry)의 수석 조리장이다.
"제가 코리와 참 친한데, 어느 날 흥분해서 묻더군요. 어떻게 유튜브가 16억 달러나 될 수 있냐고 말이죠. 자기도 똑같이 새벽 6시에 일어나 다음날 새벽 3시에 잠자리에 들며 열심히 일하는데, 어떻게 아이폰 앱 하나가, 사이트 하나가 상상도 할 수 없는 가치가 될 수 있냐는 거죠. 제가 답했죠. 나도 잘 모르겠다고. 시장가치라는 것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유튜브 매각협상 때 '데니스'(미국의 대중패밀리레스토랑. 그는 20달러만 있으면 배 부르게 먹을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에서 야후의 제리 양을 만났고 바로 다음 날에 구글의 에릭 슈미트를 만났어요. 그리고 구글과 계약했죠. 그런데 어떻게 유튜브가 전세계 데니스의 가치보다 4배나 더 높을 수 있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엔지니어인 그에게 돈은 숫자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일을 한 것이니까.
그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그때 유튜브를 구글에 매각하지 않았다면 돈을 더 많이 벌었을 것 아니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고 말했다. "회사를 팔고 직원들에게 물어봤죠. 모두가 행복하다고 했어요. 주말까지 밤새워 일하면서 지쳤던 거죠. 하지만 또 하나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이유도 있었어요. 구글을 통해서 모바일 서비스를 하고, 번역기능을 제공하는 것 말이죠. 그걸 모두가 알고 있었던 거죠. 직원들이 행복하게 코딩할 수 있는 것, 직원들에게 최선인 것, 그것이 바로 상품에도 최선인 겁니다(what was best for the employees was best for the product)."
스티브 첸에게 '가치'란 시장이 평가하는 가치와는 많이 달랐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코딩하는 것, 그래서 상품을 더 개선할 수 있는 것, 그 속에서 재미를 느끼는 것, 그것이 그에게 가치인 것이다.
"단 한번 만이라도 마음 가는 대로 해보라"
취업도 어렵고, 창업도 어려운, 오도가도 못하는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한 말씀 해달라고 부탁해보았다. 아주 조심스러워했다. 한국을 잘 몰라서가 아니다. 생각보다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그의 부인은 구글코리아에 근무했던 박지현씨이다).
"실리콘밸리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 중퇴하고, 1년에 회사를 네 개나 차리고 모두 실패해도 털고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워낙 많으니까요. 좋은 경험을 쌓았으니 다음 해에 네 개를 더 차리는 거죠. 그런데 제가 태어난 타이완이나(그는 8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한국은 한번 실패하면 영원히 실패하는 겁니다. 그래서 아이디어가 완벽해질 때까지 계속 생각만 합니다. 그러다 결국 아무것도 못하는 거죠. 그래서 어떤 실질적인 스타트업(초기기업)이나, 혁신과 진전이 없습니다. 엔지니어 인적자원이나 교육받은 사람들이 부족해서가 아니에요. 문화의 차이인 것 같아요. 실패를 받아들이는, 또 실패한 사람을 바라보는 태도가 다른 것이죠."
그러면서 그는 중국 이야기를 꺼냈다. "중국은 최근 5~6년간 참 많이 변한 것 같아요. 뭔가 시도해보려는 문화가 생겨나고 있어요. 바이두(중국 최대의 검색엔진)와 텐센트(중국 인터넷서비스업체)를 보세요. 이제 중국에서는 대기업을 관두고 스타트업을 시작한다 해도 더 이상 사회에서 따돌림 받지 않습니다. 한국도 이런 회사들 몇 개만 나와 준다면 폭포처럼 젊은 친구들이 회사를 만들 것이고, 설령 실패를 해도 더 이상 버림받지도 않을 겁니다(you're not social outcast no longer). 문화가 바뀔 거예요. 유튜브를 보세요. 동영상에 관한 한 대기업인 구글을 이겼잖아요. 한국 젊은이들도 도전하면 대기업을 넘어서는 기업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자는 스티브 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 속으로는 그랬다. '실리콘밸리니까 가능하지. 한국 같으면 어림도 없어. 그렇게 '줄창' 실패를 할 수 있는 것도 행운이지. 한국은 한번 실패하면 다시 실패할 기회조차 얻기 힘들어'라고.
그런데 스티브 첸이 한마디 덧붙였다.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이런 말은 꼭 하고 싶네요. 너무 심오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너무 재지 마세요. 마음 가는 대로 한번이라도 해보라는 거죠. 틀리면 어때? 다시 하는 거지 뭐! 이런 자세로 말이죠."
그렇다. 환경만 탓하고 있으면 자신도, 환경도 바꿀 수 없다. 한 방울 한 방울 꽁꽁 언 땅을 내려치다 보면 어느 순간 폭포처럼 쏟아져 언 땅을 녹이고 대로를 만들어버리는 날이 올 것 아닌가.
스티브 첸과의 만남은 마흔이 넘은 기자에게도 울림이 컸다. 모두 다 갖춰야 출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다간 평생 아무것도 못한다. 디테일에 몰입하다 보면 답이 나온다. 그리고 또 하나. 새로운 도전에 나서면서 두려운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믿어라. 두려움을 떨치고 나가면 언젠가 자신도 모르게 그 대열의 가장 앞에 서 있게 될 거라는 것.
*다음 회에는 스티브 첸이 곧 공개할, 유튜브를 넘어선 새로운 서비스에 대한 언론사 최초의 인터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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