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6. 27.

사용자 경험의 정의, 범위, 오해

이 분야는 교통정리가 좀 필요하다 싶을 정도로 이런저런 용어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대충 꼽아 보자면

HCI (Human Computer Interaction) or CHI (Computer Human Interaction)
IxD (Interaction Design)
UID (User Interface Design)
Human Factors or Ergonomics
Usability
Information Architecture


등이 있습니다.
이 와중에, 2000년대 이후 뜨기 시작한 용어가 있으니 바로 UX (User Experience) 입니다.


1. UX의 영역

대체 사용자 경험이 무엇이며 위에 다열된 다른 분야들과 무슨 차이가 있는걸까요. 사람마다 책마다 조금씩 다르게 얘기하지만 다들 대충 아래와 같은 그림을 그립니다.


(출처: What Is User Experience Design)


(출처: Designing for Interaction)


어,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대충 다 포함하고 있으면서 짱 먹겠다는 얘긴데요, 이런 식의 시각화는 여러가지 오해의 원인이 되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이런 식의 시각화”란 벤다이어그램을 말합니다. 위 그림을 보는 순간

각 분야의 전문성
각 분야간 공유되는 전문성


같은 것들이 생각납니다. 벤다이어그램이 기본적으로 집합과 원소의 소속(membership) 관계를 나타내기 위한 용도로 쓰여왔기 때문인지, 저렇게 생긴 그림 자체가 그런 느낌을 불러일으키는건지 혹은 두가지 모두인지 모르겠으나 하여간 그렇습니다.

이러한 느낌이 특히 문제가 되는 경우는 위 그림에서 UX 처럼 거의 전체집합 수준으로 동그라미를 그려놓는 상황인데요, 그걸 보면 “대체 UX가 뭐야?”라는 느낌을 줄 수 있다는 것이죠. 지인들이 저한테 요즘 뭘 하느냐고 물어보면 “게임 디자인과 UX를 공부합니다”라고 이야기하는데, 그걸 듣고나서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그래서 대체 뭘 공부한다는거요?”입니다.

그렇다고 영역(동그라미의 크기)을 줄이자니 그것도 곤란한 것이, 실제로 저는(그리고 UX를 공부하는 다른 분들도) 저 다양한 분야에 고르게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영역이 아니라 관점

그래서, 문제를 살짝 틀어서 보기로 했습니다. UX라는 것을 어떠한 전문 영역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니라 기존에 존재하던 각 전문 영역들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단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즉 UID, IxD, IA 등 각 분야의 전문성은 온건히 유지하되, 이를 공부하거나 실천할 때 사용자 경험의 일부가 아닌 전반을 넓게 고려하자라는 의미로 보는 것입니다. 사용자 경험의 전반이란 도널드 노만 박사가 Emotional Design에서 주장한 두뇌 작용 3단계(three levels of processing), 최근 주장하고 있는 Sociable Design 등으로의 확장을 말합니다.

이런 식의 확장은 학문 영역에서는 흔히 있는 일인데 이를테면 인지과학(Cognitive Science)이나 진화심리학(Evolutionary Psychology) 등이 그렇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진화심리학을 예로 들자면, 진화심리학은 발달심리, 교육심리, 임상심리, 이상심리, 사회심리, 공학심리, 정서심리 등과 같이 특정한 영역을 갖는다기 보다, 기존의 다양한 심리학 분야와 결합되는 새로운 “보는틀”을 제공하는 일종의 "접근법”입니다.

UX를 특정 전문 분야가 아닌 기존 분야에 대한 접근법 혹은 새로운 관점이라는 식으로 이해하면 닐슨-노만 그룹의 정의도 좀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User experience" encompasses all aspects of the end-user's interaction with the company, its services, and its products. The first requirement for an exemplary user experience is to meet the exact needs of the customer, without fuss or bother. Next comes simplicity and elegance that produce products that are a joy to own, a joy to use. True user experience goes far beyond giving customers what they say they want, or providing checklist features. In order to achieve high-quality user experience in a company's offerings there must be a seamless merging of the services of multiple disciplines, including engineering, marketing, graphical and industrial design, and interface design.

쉽게 말해서 UX라는 말이 생긴 후에 탄생한(혹은 UX만의 고유한) 사용자 조사 방법론이나, 테스트 방법론, 전반적인 프로세스 같은 것이 있는 것은 아니고, 다만 기존의 방법/도구/프로세스를 적용하는 관점과 태도의 차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3. UX 디자인에 대한 오해

위 정의를 보면 UX라는 것은 행위 중립적이라서 “UX를 한다”라는 표현은 좀 애매할 수 있습니다. UX 엔지니어링을 한다거나, UX 리서치를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표현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물론 UX 뒤에 따라오는 단골 단어는 “디자인”입니다. 제 명함에도 UX Designer라고 써 있고요. (위키피디아에서도 UX 페이지에 접속하면 자동으로 UXD 페이지로 이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맥락에서 디자인이란 사실 기획(product/service design)과 디자인(visual design)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앞에서 나열한 다른 분야들(interaction design, information architecture design 등)도 모두 포함하고 있는 큰 개념인거죠.

하지만 국내에서는 (특히 웹 분야에서는) 디자인이라고 하면 비주얼 디자인을 떠올리게 되죠. 그래서일까요, 비주얼 디자인을 하시던 분들이 UX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관심을 가지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만 문제는 간혹 오해를 하시는 분들이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오해란, UX 디자인은 디자이너(어, 그러니까 비주얼 디자이너)의 영역이라는 생각을 말합니다.

특히 “UX 디자인과 기획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라는 주장을 종종 접하는데 의도의 선함(역할을 명확히 구분하여 잘 협력하자), 혹은 악함(내 업무 영역에 침범하지 마시오)에 무관하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표현이라서 좀 걱정이 됩니다. 물론 현재 조직 구조 자체가 그런 식으로 나뉘어진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필요한 고민이기는 하겠지만요.


4. 결론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UX는 특수한 전문 영역이 아니라(1. UX의 영역) 기존 영역을 바라보는 확장된 관점을 지칭하는 용어로 보아야 합니다(2. 영역이 아니라 관점).
UX 디자인에서의 디자인이란 시각 디자인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제품/서비스 전반에 걸친 모든 디자인 – IxD, UID, IA 등 – 을 포함하는 용어입니다. UX Designer를 우리말로 굳이 번역 하자면 UX 기획자에 가깝습니다.


출처 : http://alankang.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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