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7. 14.

진화심리학과 진화의학. 환경이 다르다고 같다고?

김우재님의 글 "정신분석학 대 진화심리학"을 읽고 씁니다:

내가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진화심리학이 암묵적으로 가정하고 있는 원리가 진화론을 기반으로 하는 다른 연계학문들과 상충한다는 사실이다. 즉, 진화심리학은 진화의학과 충돌한다. 진화의학의 기본 원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의 생태-사회적 환경이 우리 조상들이 진화하던 홍적세의 그것과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많은 질병들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진화심리학은 변화한 환경을 최소한으로 고려할 때만 학문 자체가 존립할 수 있다. 생태-사회 환경의 변화가 극명하고, 인간의 행동과 심리가 이러한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면, 진화심리학이 측정한 데이터들은 폐기처분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진화심리학이 이 문제를 풀고 넘어가지 않는한 영원히 논란에 휩쌓일 것은 자명하다. 그리고 현재까지 그 어떤 진화심리학자도 이러한 문제를 짚고 넘어가는 것을 보지 못했다.

종합설 전통에서 비교적 최근에 파생된 두 분야인 진화의학과 진화심리학 사이에 충돌이 있다면 적어도 둘 중 한 분야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그런데 두 분야 사이의 충돌에 대한 위 지적은 제가 이해하기로는 틀렸습니다.

진 화의학에서 말하는 "너무나" 다른 것과 진화심리학에서 말하는 "최소한" 다른 것 사이의 충돌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는 겉보기 충돌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나"와 "최소한"이 각각 어느 정도를 이야기하는지 따져보면(즉 모호성을 제거하면) 충돌이 아니게 됩니다.

두 가지를 이야기하면 좋겠습니다.


첫째, "다른 것"과 "유사한 것"은 항상 공존하는 개념입니다. 메트 리들리(Matt Ridley)의 <Nature via Nurture>에서 이 문제를 명료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Similarity is the shadow of difference. Two things are similar by virtue of their difference from another; or different by virtue of one's similarity to a third. ... A man and a woman may be very different, but by comparson with a chimpanzee, it is their similarities that strike the eye. (의역: 유사함은 다름의 그림자다. 두 사물이 유사한 이유는 이 둘과 다른 세번째 사물과의 차이 때문이고, 두 사물이 다른 이유는 유사한 세번째 사물과의 유사함 때문이다. ... 남성과 여성은 크게 다를 수 있지만, 침팬지와 비교한다면 오히려 남녀간에 차이가 거의 없다는 점에 놀랄 것이다.

과거와 현재의 환경이 완전히 동일하거나 완전히 다를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고, 어느 정도의 유사성과 어느 정도의 차이점이 있을텐데, 어떤 관심사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유사성에 집중할 수도 있고(진화심리학 연구), 차이점에 집중할 수도 있는 것이죠(진화의학).

현 대인의 식습관은 과거와 얼마나 다르다고 해야하나요? 스니커즈, 콜라, 버거킹 등 온갖 것들을 만들어냈지만 대체로 소화할 수 있는 것들, 영양분이 들어 있는 것들을 먹는다는 점에서는 과거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영양분의 과다섭취라는 점에서는 과거와 크게 다릅니다. "인간은 어떤 음식을 왜 선호하는가" 같은 주제를 연구하는 진화심리학자는 환경이 "최소한" 다르다고 말할 것이고, 식습관 차이로 인한 고도비만 등을 연구하는 진화의학자는 환경이 "너무나" 다르다고 말할텐데 이 둘 사이에 충돌이 있다고 하는 것은 억측입니다.


둘째, 환경이 너무나 다르거나 최소한 다르다고 할 때 이 환경이 대체 무엇을 말하는지에 대해 따져봐야 합니다.

진화심리학에서 별 부연 없이 "과거 환경"이라고 하면 EEA(진화적 적응 환경; Environment of Evolutionary Adaptation)를 말합니다. 초기(아마도 7~90년대)에는 이 개념의 정의에 모호한 측면이 있었던 것 같은데 적어도 90년대 후반부터는 비교적 정교하게 정리가 된 것 같습니다.

현 재 맥락에서 중요한 점은 EEA가 특정한 시대와 장소(이를테면 십만 년 전 아프리카)를 의미하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EEA란 특정 종이 오랜 시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직면해온 적응 문제들의 집합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어떤 적응 문제를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과거 환경(EEA)과 현대와의 차이가 크다고 볼 수도 있고, 적다고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 임신을 한다는 점은 과거나 현재나 동일하므로 이에 따른 부양투자(PI)의 차이를 연구할 때엔 이 유사성에 집중하게 될 것이고, 영양분의 과잉 섭취 문제는 과거에 비해 현대에 나타난 문제이므로 이에 따른 질병(고도비만 등)을 연구할 때엔 이 차이에 집중하게 될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1) 동일한 대상을 연구할 때에도 관점에 따라 차이가 "크다"거나 "작다"고 말할 수 있다는 점, 2) "환경"이라는게 단일한 개념이 아니라서 어떤 적응 문제를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차이의 크기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김우재님의 글 중반부에서 마시모 피글리우치(Massimo Pigliucci)의 글을 인용하고 있는데요, 여기에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잘 표현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The devil, rather, is in the details. (오히려 악마는 세부적인 곳에 있다.)

구 체적인 사례들을 따져보면, 즉 진화의학의 "어떤 연구"와 진화심리학의 "어떤 연구"는 실제로 충돌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그리고 이런 충돌은 건전한 것/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세부적인 논의 없이 퉁쳐서 "진화심리학은 차이가 작다하고 진화의학은 차이가 크다 하니 영원히 논란에 휩쌓일 것이 자명하다"라고 결론내리는 것은 성급한 것 같습니다.

제 가 알기로 김우재님은 최소한 2000년대 초반에 이미 종합설, 진화심리학, 진화의학 관련 논의들을 깊게 이해하고 계셨고, 그 후로도 관련된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으셨습니다. 따라서 제가 위에서 말한 기본적인 내용들을 몰랐을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 없죠. 그런데 저토록 허술한(혹은 허술해보이는) 주장을 하신 이유는? 아마도 누군가가 어설프게 덤벼들길 기다리며 함정을 파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ㅎㅎ


출처 : http://alankang.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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